박 전 대통령 고교 은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배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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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고교 시절 은사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된 사실이 22일 확인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박 전 대통령 조사를 앞두고 이에 대한 조사를 준비했다. 본지가 입수한 특검팀의 미공개 질문지에 그 내용이 나온다.

특검 “진보 문예지 지원 축소 민원” #여고 때 담임 “균형 맞추자는 취지”

특검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초 ‘좌편향’ 문예지에 대한 정부 지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상률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건전 문예지는 제대로 지원이 안 되고 좌편향 문예지에 지원이 된다고 하니 검토 보고서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한 이유는 모교인 성심여고의 담임 교사였던 가톨릭대 김모 교수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정부지원금에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취지의 민원을 박 전 대통령이 전달받은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문학비평가협회장을 지낸 문학평론가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김 전 교문수석은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문예지 지원 현황을 확인했다. 이후 “진보 성향 문예지 지원은 축소하고 보수 쪽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김 교수는 22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맞춰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결과적으로 블랙리스트라는 게 생긴 부분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 비판적인 문예지로 분류돼 지원이 삭감된 곳은 문학동네 등이었다. 문학동네 발간 서적 중 세종도서(우수도서)로 선정된 책은 2014년 25권에서 2015년 5권으로 줄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9월 30일에는 세월호 사고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을 문제 삼아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전 교문수석으로부터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제재로 영화제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보고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이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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