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정'앞 둔 월드컵 대표팀, 원로 3인의 고언
한국(3승1무1패ㆍ승점 10)은 이란(3승2무ㆍ승점 11)에 이어 조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분위기는 썩 밝지 못하다. 5경기에서 6골이나 내줘 중국ㆍ카타르와 함께 최다 실점을 했다. 대표팀 주축인 유럽파 선수들은 부상과 컨디션 저하에 시달리고 있고, 에이스 손흥민(25ㆍ토트넘)은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한다. 지난해 9월 중국과의 1차전(서울)에서는 3-0으로 앞서다 후반 두 골을 내줘 3-2로 찜찜하게 이겼다. 중국은 “이번 만큼은 한국을 잡겠다”며 눈에 불을 켰다.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 #“수비·골키퍼 너무 자주 바뀌어 불안 #젊은 코치들 감독에 직언 할 수 있나” #[김정남] OB축구회장 #“중국 팀서 뛰는 수비수들 실수 잦아 #공격 나갔다 수비로 전환도 늦어” #[김호곤] 축구협회 부회장 #“공 뺏으면 역습 않고 왜 가만 있나 #상대가 침 뱉어도 냉정 잃지 말아야”
미묘한 시점에 열리는 한ㆍ중전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 축구에 닥친 중대 분수령이다. 중앙SUNDAY는 축구 원로 세 분을 모셨다. 조중연(71) 전 대한축구협회장, 김정남(74) 한국OB축구회장, 김호곤(66)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다. 세 분 모두 축구협회 전무를 역임한 공통점이 있다. 김호곤 부회장은 2004년 5월 창사에서 중국을 2-0으로 누르고 아테네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지을 당시 올림픽팀 감독이었다. 세 사람 모두 “정신력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플레이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면서도 “최근 대표팀의 경기력이 좋지 않다. 한국 축구의 특징이 사라졌다”며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 이번 한ㆍ중전이 갖는 의미는.
- ▶조중연(이하 연)= "역대 전적(18승12무1패)에서 압도하고 있고, 공한증(恐韓症)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경기도 쉽게 넘어간 적은 없었다. 이번에 지면 축구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줄 수 있다. 후배들이 정신 바짝 차려서 ‘축구만은 한국에 안 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김정남(이하 남)= "중국이 정책적으로 축구를 키우고 있지만 대표팀이 하루아침에 강해지진 않는다. 특히 수비가 약하다. 우리 선수들은 중국이 아니라 월드컵 본선에 나가 세계 강호들과 경쟁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김호곤(이하 곤)= "중국과의 정치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선수들이 부담을 갖게 될까 봐 걱정이다. 중국전만 잘 끝내면 남은 일정은 순조롭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 중국이 홈 텃세를 심하게 부리지 않을까.
- ▶연=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 담당 부회장인데 편파 판정이 나오겠나. 대신 중국이 초반 기세를 잡게 놓아두면 크게 고전할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이나 코치들이 큰 경기 벤치 경험이 적어 좀 걱정스럽다."
▶곤= "2004년 창사에서도 사고가 있었지만(붉은악마 여학생이 볼트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림) 중국 관중은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도 빠르다. 당시에도 경기 후 중국 선수들에게 욕을 했지만 우리 선수들에겐 기립박수를 쳐 줬다."
- 중국 선수들이 거칠게 나올 것 같은데.
- ▶남= "정신적인 부분을 잘 다져야 한다. 감독이 선수들의 결집력을 극대화 시키는 게 중요하다. 경험 많은 선수들이 있으니 제 기량을 발휘할 것으로 본다."
▶곤= "상대 거친 플레이에 대응을 자제하고, 참아야 한다. 70년대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고(故) 함흥철 선생은 ‘상대 선수가 가래를 뱉어서 내 입에 넣더라도 참으라’고 하셨다."
- 우리 수비에 문제점이 자꾸 드러나는데.
- ▶남= "중국 팀에서 뛰는 김기희ㆍ홍정호ㆍ장현수 등 수비수들의 실수가 많았다. 공수 전환이 더 빨라져야 한다. 공격에 가담했다가 수비로 복귀하는 게 늦다."
▶연= "슈틸리케 감독이 맡은 지 2년 됐는데 아직까지 확실한 베스트 11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격진은 바꿀 수도 있지만 수비와 골키퍼는 거의 고정돼야 조직력을 갖고 안정된 경기를 할 수 있다."
- 차두리에 이어 설기현이 코치로 합류했는데.
- ▶남= "중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선배들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충고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연= "코치들이 감독에게도 조언과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수들과 같은 세대의 코치들이 감독에게 직언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 중국이 축구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는데.
- ▶연= "2020년까지 등록선수 5000만 명을 만든다는 게,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에 가서 보니 인프라는 정말 잘 갖춰놓았더라."
▶곤= "중국이 좋은 선수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건 좋은데, 결국은 지도자를 어떻게 양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세 분에게 우리 대표팀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축구협회 간부라 입장이 조심스러운 김호곤 부회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수비에서 공을 빼앗았을 때가 공격의 찬스다. 그런데 우리는 볼을 뺏으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서 있고 빠른 역습을 하지 못한다. 볼의 소유를 위한 소유를 하지 말고 전진을 위한 소유를 해야 한다.”
김정남 회장은 “빠른 공수 전환으로 경기를 이끌어 가야 한다. 손흥민이 밀월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한 장면에 답이 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논스톱으로 슈팅을 때려 골을 만들지 않나. 조금만 늦으면 수비에 가로막힌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이 내친 김에 수위를 높였다. “일본은 미드필드에서 지나치게 잔 패스가 많다. 짧게 주고 받는 패스 위주의 플레이는 보기 좋을 수는 있지만 승부를 내는 축구는 아니다. 한국 축구 특유의 스피드와 역습이 살아나야 한다.”
조중연 전 회장이 정리를 했다. “우리 대표팀이나 프로팀 모두 뛰는 양이 적다. 요즘 유럽축구 보면 공수 전환이 정말 빠르고 정신 없이 뛴다. 우리 선수들도 더 많이,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