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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호, 한국축구 특유의 스피드·역습이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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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5면

'중국 원정'앞 둔 월드컵 대표팀, 원로 3인의 고언

지난 14일 서울 성북동의 한정식집 ‘국화정원’에서 만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김정남 한국OB축구회장,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왼쪽부터). 1970년대에 사용된 가죽 축구공을 보며 이들은 “어려울 때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준 한국축구의 투혼이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정현 기자

지난 14일 서울 성북동의 한정식집 ‘국화정원’에서 만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김정남 한국OB축구회장,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왼쪽부터). 1970년대에 사용된 가죽 축구공을 보며 이들은 “어려울 때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준 한국축구의 투혼이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정현 기자

축구는 내셔널리즘을 먹고 자라는 스포츠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한국과 중국의 축구 경기가 열린다. 3월 23일 오후 8시 35분(한국시간), 장소는 중국 대륙 한복판인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이다. 중국(2무3패ㆍ승점 2)은 이번 경기에서 지면 예선 탈락이 확정된다. 축구광인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유별난 관심과 국가 차원의 천문학적인 투자에도 중국 축구 대표팀은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건국 영웅 마오쩌둥(毛澤東)의 고향에서 중국 축구가 새 출발을 하겠다는 의지로 경기 장소를 창사로 정했다고 한다.


 한국(3승1무1패ㆍ승점 10)은 이란(3승2무ㆍ승점 11)에 이어 조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분위기는 썩 밝지 못하다. 5경기에서 6골이나 내줘 중국ㆍ카타르와 함께 최다 실점을 했다. 대표팀 주축인 유럽파 선수들은 부상과 컨디션 저하에 시달리고 있고, 에이스 손흥민(25ㆍ토트넘)은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한다. 지난해 9월 중국과의 1차전(서울)에서는 3-0으로 앞서다 후반 두 골을 내줘 3-2로 찜찜하게 이겼다. 중국은 “이번 만큼은 한국을 잡겠다”며 눈에 불을 켰다.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 #“수비·골키퍼 너무 자주 바뀌어 불안 #젊은 코치들 감독에 직언 할 수 있나” #[김정남] OB축구회장 #“중국 팀서 뛰는 수비수들 실수 잦아 #공격 나갔다 수비로 전환도 늦어” #[김호곤] 축구협회 부회장 #“공 뺏으면 역습 않고 왜 가만 있나 #상대가 침 뱉어도 냉정 잃지 말아야”

 미묘한 시점에 열리는 한ㆍ중전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 축구에 닥친 중대 분수령이다. 중앙SUNDAY는 축구 원로 세 분을 모셨다. 조중연(71) 전 대한축구협회장, 김정남(74) 한국OB축구회장, 김호곤(66)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다. 세 분 모두 축구협회 전무를 역임한 공통점이 있다. 김호곤 부회장은 2004년 5월 창사에서 중국을 2-0으로 누르고 아테네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지을 당시 올림픽팀 감독이었다. 세 사람 모두 “정신력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플레이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면서도 “최근 대표팀의 경기력이 좋지 않다. 한국 축구의 특징이 사라졌다”며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 한ㆍ중전이 갖는 의미는.

▶조중연(이하 연)= "역대 전적(18승12무1패)에서 압도하고 있고, 공한증(恐韓症)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경기도 쉽게 넘어간 적은 없었다. 이번에 지면 축구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줄 수 있다. 후배들이 정신 바짝 차려서 ‘축구만은 한국에 안 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김정남(이하 남)= "중국이 정책적으로 축구를 키우고 있지만 대표팀이 하루아침에 강해지진 않는다. 특히 수비가 약하다. 우리 선수들은 중국이 아니라 월드컵 본선에 나가 세계 강호들과 경쟁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김호곤(이하 곤)= "중국과의 정치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선수들이 부담을 갖게 될까 봐 걱정이다. 중국전만 잘 끝내면 남은 일정은 순조롭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이 홈 텃세를 심하게 부리지 않을까.

▶연=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 담당 부회장인데 편파 판정이 나오겠나. 대신 중국이 초반 기세를 잡게 놓아두면 크게 고전할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이나 코치들이 큰 경기 벤치 경험이 적어 좀 걱정스럽다."


▶곤= "2004년 창사에서도 사고가 있었지만(붉은악마 여학생이 볼트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림) 중국 관중은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도 빠르다. 당시에도 경기 후 중국 선수들에게 욕을 했지만 우리 선수들에겐 기립박수를 쳐 줬다."

중국 선수들이 거칠게 나올 것 같은데.

▶남= "정신적인 부분을 잘 다져야 한다. 감독이 선수들의 결집력을 극대화 시키는 게 중요하다. 경험 많은 선수들이 있으니 제 기량을 발휘할 것으로 본다."


▶곤= "상대 거친 플레이에 대응을 자제하고, 참아야 한다. 70년대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고(故) 함흥철 선생은 ‘상대 선수가 가래를 뱉어서 내 입에 넣더라도 참으라’고 하셨다."

우리 수비에 문제점이 자꾸 드러나는데.

▶남= "중국 팀에서 뛰는 김기희ㆍ홍정호ㆍ장현수 등 수비수들의 실수가 많았다. 공수 전환이 더 빨라져야 한다. 공격에 가담했다가 수비로 복귀하는 게 늦다."


▶연= "슈틸리케 감독이 맡은 지 2년 됐는데 아직까지 확실한 베스트 11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격진은 바꿀 수도 있지만 수비와 골키퍼는 거의 고정돼야 조직력을 갖고 안정된 경기를 할 수 있다."

차두리에 이어 설기현이 코치로 합류했는데.

▶남= "중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선배들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충고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연= "코치들이 감독에게도 조언과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수들과 같은 세대의 코치들이 감독에게 직언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중국이 축구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는데.

▶연= "2020년까지 등록선수 5000만 명을 만든다는 게,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에 가서 보니 인프라는 정말 잘 갖춰놓았더라."


▶곤= "중국이 좋은 선수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건 좋은데, 결국은 지도자를 어떻게 양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세 분에게 우리 대표팀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축구협회 간부라 입장이 조심스러운 김호곤 부회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수비에서 공을 빼앗았을 때가 공격의 찬스다. 그런데 우리는 볼을 뺏으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서 있고 빠른 역습을 하지 못한다. 볼의 소유를 위한 소유를 하지 말고 전진을 위한 소유를 해야 한다.”

 김정남 회장은 “빠른 공수 전환으로 경기를 이끌어 가야 한다. 손흥민이 밀월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한 장면에 답이 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논스톱으로 슈팅을 때려 골을 만들지 않나. 조금만 늦으면 수비에 가로막힌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이 내친 김에 수위를 높였다. “일본은 미드필드에서 지나치게 잔 패스가 많다. 짧게 주고 받는 패스 위주의 플레이는 보기 좋을 수는 있지만 승부를 내는 축구는 아니다. 한국 축구 특유의 스피드와 역습이 살아나야 한다.”

 조중연 전 회장이 정리를 했다. “우리 대표팀이나 프로팀 모두 뛰는 양이 적다. 요즘 유럽축구 보면 공수 전환이 정말 빠르고 정신 없이 뛴다. 우리 선수들도 더 많이,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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