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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앞에서 판 흔들면 콘이 뒤에서 이삭줍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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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0면

백악관 경제팀의 골드먼삭스 용병들

지난달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수행하는 스티브 므누신 (왼쪽) 재무장관과 개리 콘(오른쪽) 국가경제위원장. [워싱턴 AP=뉴시스]

지난달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수행하는 스티브 므누신 (왼쪽) 재무장관과 개리 콘(오른쪽) 국가경제위원장. [워싱턴 AP=뉴시스]

“연방준비제도(Fed)는 아주 잘하고 있다.”

금리 폭등한 94년 월가의 생존자 #개리 콘, 스티브 므누신 등 중용 #강함과 유연함 겸비한 힘든 상대

도널드 트럼프 경제팀의 좌장을 맡고 있는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개리 콘 위원장이 한 말이다. 숙제검사 중에 학생을 격려하는 선생님 같은 말투다. 시장에서는 새 정부가 금리인상 궤도에 진입한 연준과 각을 세우며 중앙은행 독립성을 해치는 수준으로 통화정책을 압박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콘의 말 한마디는 단순하지 않은 복선을 내포한 채 즉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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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와 글라디에이터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2016년 어느 날, 트럼프 후보는 콘이라는 골드먼삭스 그룹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와 티타임을 가졌다.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의례적 티타임은 몇 시간을 넘기면서 이른바 ‘사나이 대 사나이’의 의기투합장으로 변모됐다. 키가 2m에 가까운 두 거구는 환담 중에 자주 박장대소를 곁들이며 서로를 칭찬했다. 당시 콘 자신도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총괄에 오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콘은 지지율이 힐러리 클린턴에 한참 미치지 못하던 트럼프에 베팅했다. 옵션 거래인으로 변동성(Volatility)에서 돈을 벌며 체득한 동물적 감각을 발휘했던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콘은 왜 해마다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는지 스스로 증명했다. ‘사람 사귀는 것도 투자’라는 월스트리트의 격언도 실천하며.

콘은 ‘94년 생존자 그룹’에 속한다. 1994년에만 연준의 정책금리는 3.25%에서 5%로 무려 2.25%포인트나 폭등했다. 금융혼란과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쳤고 역으로 그 해 월스트리트에서 임원 승진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때문에 그해의 승진자는 특별한 그룹으로 분류돼 어느 조직에서든 우대를 받았다. 트럼프 경제팀의 또 다른 축인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이 콘 위원장과 함께 94년 골드먼삭스 임원승진 동기다. 반면 사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에게 94년은 잔인한 해였다. 대선 당시 트럼프의 탈세의혹이 언급될 때면 어김없이 95년에 그가 미화 9억 달러(약 1조원)가 넘는 손실을 국세청에 신고하고 수년간 거액의 세금을 감면받은 사실이 거론됐다. 95년 세무신고는 94 회계연도의 실적을 반영하는 것이니 트럼프에게 금리인상은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임기가 금리인상 사이클과 오버랩되는 것을 확인한 트럼프가 ‘1994년 전쟁’을 경험하고 생존한 검투사들을 뽑은 것은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모펀드 운용자 시절 영화 ‘X맨’ 시리즈에 투자했던 므누신 장관도 스스로 수퍼 히어로가 될 기회를 맞이했다. 특히 다음달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발표는 므누신 장관의 실질적 데뷔전이 될 듯하다.

콘 위원장은 옵션 전문가다. 옵션 거래인은 온건파도 강경파도 아니다. 단지 물결대로 반응하기를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무초식의 닌자들일 뿐이다. 이들이 신봉하는 ‘델타 헤지(delta hedge)’의 구결은 철저히 주어진 환경에 따른 냉정한 방어전략(Hedge)을 가르친다. 그 동태적 방어(Dynamic Hedge)전략은 수학의 미분개념을 차용한 전략이다. 그래프에서 X0에서의 미분값(기울기)이 0.3이면 헤지비율은 30%가 된다. 반대로 X1에서의 미분값(기울기)이 가파르게 올라가 0.7이 된다면 헤지비율은 70%가 된다. 옵션 거래인이 X0에서는 온건파로 보일지 모르지만 X1에서는 초강경파로 돌변하게 된다. 환경이 바뀌는 대로 온건과 강경의 패가 동태적으로 변동한다. 동태성이 생존확률을 높인다는 것을 이론에서 배우고 실전에서 깨달으면서 이를 실천할 따름이다. 예컨대 최근 극단적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을 콘이 제압했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를 놓고 콘을 온건파라고 속단하면 오산이다. 브렉시트(Brexit)를 넘어 프렉시트(Frexit) 불확실성까지 들이닥친 유로존에 지금 강경한 보호무역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논리로 나바로의 논리를 파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는 아시아 국가들이 콘을 온건파 구원자로 믿었다가는 낭패를 볼 확률이 높다. 이들의 동태성은 미국의 충실한 동맹이라 불리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에게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혼돈 대비한 위험관리 시급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외환·통화·통상 등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충돌과 모순을 야기하고 있다. 강요에 가까운 미국으로의 투자회귀(reshoring)는 스스로 강달러를 촉발하기에 무역 경쟁국가들이 환율을 조작해 강달러를 유도한다는 비난과 모순된다. 대규모 감세와 방대한 인프라 투자는 과잉유동성을 줄이고자 하는 연준의 이유 있는 금리인상 기조와도 충돌한다. 관세 장벽과 멕시코 국경 봉쇄는 물가상승의 잠재요소로 자국민의 후생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바야흐로 뒤죽박죽 혼돈의 시대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 같은 상호모순적 정책방향도 시점과 폭과 상대방을 달리하여 운용할 수만 있다면 큰 국익을 창출할 도구가 될 수 있다. 큰 장은 혼돈 가운데 서기 때문이다. 트럼프 팀이 노리는 것이 이 같은 변동성이다. 파도타기를 잘할 수 있다면 대통령이 치어리더로 판을 흔드는 역할을 하고 실무진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몸싸움을 해가며 이삭줍기를 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콘 위원장-므누신 장관-도노반 차관으로 이어지는 트럼프 1기 경제팀의 골드먼삭스 용병들은 레버리지와 디레버리지, 동태적 헤지, 합병과 분사 등의 흔들기 판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 팀이다. 강함과 유연함을 모두 가진 팀으로 인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들이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우겠다’는 출사표를 품고 있다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화려한 이력서가 걸려있던 공고문이 언제 독촉장으로 가득찰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문수

액티스코리아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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