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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맨(Man)은 남성인가, 사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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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YMCA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Young man - there's no need to feel down'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팝송 'Y.M.C.A'가 그것이다. 30여 년 동안 애창되고 있는 이 노래는 홍보 음악은 아니지만,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내용과 곡조가 마치 YMCA 정신을 담은 듯하다. 서울YMCA는 종로의 번화가 한복판에서 그런 활력의 발전소가 돼 주었다. 그곳은 많은 젊은이에게 문화 창조의 요람이었을 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굵직한 담론의 발상지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많은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여성 회원들의 '총회원'의 자격을 둘러싸고 물의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헌장에는 총회원 자격을 '만 19세 이상의 기독교회 정회원인 사람'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여기에서 '사람'은 '남자'에 국한한다는 자의적 해석으로 여성들의 권리 행사를 원천 봉쇄해온 것이다. 그래서 서울YMCA에서는 그동안 여성 회원들이 총회에서 각종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해 왔다.

이에 대해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돼 널리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성회원들은 다방면으로 개선을 시도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시정을 권고해온 바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사회는 위의 관련 조항에서 '사람'을 아예 '남성'으로 바꾸고 여성 총회원은 특별한 심사를 거친 이들에 한정한다는 개정안을 공고했다. 세계 각지와 한국의 여러 도시에 수많은 YMCA가 있지만, 'Man'을 '남성'으로 못 박은 지회는 서울YMCA가 유일하다. 여성회원들은 똑같이 회비를 납부해왔을 뿐 아니라 자원 봉사와 회원활동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YMCA는 100년 전 출현해 민간단체의 전범(典範)이 되었고, 산업화 시대에도 시민 사회의 확대를 위해 꾸준히 힘써 왔다. 공공성에 대한 열망으로 시민사회의 황무지를 개척해온 대표적인 민간단체가 시대착오적인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은 그 회원들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부끄러움이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중하면서 협력해 선을 이루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원하고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100년 전 여성이 야구단을 결성했던 YMCA에서 '맨'은 남성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Y'는 성별을 넘어선 청년 정신의 상징이다. 젊음의 동력으로 사회를 재충전해야 할 지금, 의연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켜 줄 리더십이 절실하다. 실의에 빠져 있던 영화의 주인공에게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YMCA 회관, 그 청순했던 기백을 다시 만나고 싶다.

김찬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