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선에 휘둘리는 대입…교육부, 대학에 “학종 확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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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늘리도록 유도해온 교육부가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학종 확대를 제지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최근 각 대학 입학처장들에게 학종 확대를 자제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학종 확대에 힘써온 교육부가 갑자기 방침을 바꾸자 대학가에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학종은 교과(내신)뿐 아니라 동아리·자율활동·봉사활동·독서 등 비교과 활동을 두루 살펴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로 2014년 12.4%였던 학종 비율은 2018년 23.6%로 두배가량 증가했다.

입시계획 발표 코 앞인데 갑작스런 입장 변화에 대학들은 당혹

복수의 대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교육부 대학정책실 공무원들이 대학 입학처장들에게 “학종 늘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서울의 A사립대 입학사정관은 “대학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수시·정시 비율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육부가 ‘학종’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대학이 ‘학종 확대를 자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대학들에게 학종 규모 늘리기 보다 내실화에 집중하라고 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교육부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지난달 28일 확정 공고한 ‘2017년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계획에서도 감지된다. 이 사업은 논술전형처럼 사교육 영향력이 큰 전형을 줄이고 공교육 위주의 입시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2014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이 사업에선 학생부전형 실시여부와 비율을 가장 큰 평가지표로 삼았다. 올해는 60개 대학에 지난해보다 18.5% 증가한 544억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올해부턴 평가 방식이 달라진다. 학생부 전형 실시 비율 자체를 빼고 ‘선발의 적절성’ 등 지표로 대체했다. 배점도 30점에서 25점으로 줄었다. 지금까지는 학생부 전형을 얼마나 확대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면, 올해부터는 학생부 전형을 얼마나 내실 있게 운영하는지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학생부전형은 학종 외에도 내신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생부교과전형이 있는데 내신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어 확대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보통 교육부가 강조해온 ‘학생부 전형’은 ‘학종’을 의미한다.

교육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학종에 대한 비판여론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B사립대의 한 입학사정관은 “최근 학종이 대입 전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데다,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본지가 지난해 6월 종로학원하늘교육과 함께 학생·학부모 1135명을 설문 한 결과 학생의 41.4%, 학부모의 58.4%가 학종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한국외대 나민구 입학처장은 “지금까지 양적 팽창에 집중하느라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며 “무조건 늘리는 것보다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게 돕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로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새롭게 들어설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선주자들이 교육부 폐지론을 내세우고 정시 확대 등의 공약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교육부가 눈치작전 들어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과 함께 국정교과서 등 박근혜정부의 꼬리표가 붙은 정책들은 탄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달까지 2019학년도(현 고2) 입시계획을 세워야 하는 대학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입시전형계획을 이제와 변경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딱히 대체할 전형도 없기 때문이다. 경희대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은 “논술·특기자 전형은 사교육 유발 전형으로 알려져 확대가 어렵고, 올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돼 정시 변별력도 떨어진 상황이다. 갑작스런 변화에 곤혹스러운 대학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학종의 장점이 있지만 지금 수준이 확대할 수 있는 최대치란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며 “정권이 바뀌면 대입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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