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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6. 김추자의 매니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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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추자는 '님은 먼곳에'에 이어 '거짓말이야' 인기 가도를 달렸다. 1973년 전성기의 김추자.

'님은 먼곳에'로 스타덤에 오른 김추자가 1970년 말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내겐 상의도 않고 독립한 것이었다. 몇 달 동안 소식이 없던 그의 매니저가 어느 날 내가 공연하던 서울 명동의 레스토랑으로 찾아왔다. 매니저는 다짜고짜 내게 곡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그는 주먹계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상당히 위압적인 태도에 벌컥 화가 났다.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곡을 내놓으란 말이야? 건방진 친구 아닌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이프를 집어들었다.

"그래, 어디 한번 찔러봐라!"

그는 한동안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 눈을 주시하다가 나이프를 벽으로 던졌다. 평소 나를 '형님'으로 모시던 게 부담이 됐던 것이었다. 그의 손을 벗어난 칼은 대형 유리창을 깨뜨렸다. 레스토랑 안 분위기가 일순 살벌해졌다. 나는 곧바로 웨이터를 불러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방에 가서 사시미 칼 하나 가져오게. 이놈이 날 못 찌르니, 나라도 찔러야겠다. 빨리 가져와!"

그제야 매니저는 내게 사과했다. 그날의 상황은 그것으로 일단락됐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차피 내 제자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건네 준 곡이 '거짓말이야'였다. 또 시간이 흘렀다. 71년 12월 초 김추자의 매니저가 또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비장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내일 제가 일 좀 저지르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내일 아침이면 아시게 됩니다."

다음날 뉴스를 보니 그가 김추자에게 소주병을 휘둘렀다는 내용이었다. 김추자가 자신을 멀리하고 '언니'라는 사람과 함께 다니는 데 화가 나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사고 며칠 뒤인 71년 12월 9일 시민회관에서 내 리사이틀이 예정돼 있었다. 김추자도 출연키로 돼 있었다. 김추자를 불러 설득했다.

"네가 사고당한 건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니 노래는 못 부르더라도 관객에게 인사는 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다."

김추자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무대에 나와 인사만 하고 들어갔다. 나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다.

그 일로 1년 징역형을 살고 72년 말 출소한 매니저가 나를 찾아왔다. 꽤 오래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는 그 친구의 덕을 많이 봤다. 그 시절 연예계는 법보다 주먹이 앞섰다.

전국으로 공연을 다니던 신중현 사단도 '주먹세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주먹계에서 힘있는 사람이 내 휘하의 매니저로 활동하는 바람에 전국 어디에서든 극진하게 대접받으며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었다.

그같은 매니저 여럿이 나를 거쳐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신중현 사단의 일을 본다고 하면 주먹세계에서도 위신이 서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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