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개척정신 없는 미국의 환경에너지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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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정인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김정인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그는 당선 이전부터 상당한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들, 예컨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반(反)이민 강화, 전 국민건강보험 제도인 오바마케어 폐지,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그리고 기후변화와 환경규제의 완화 등과 같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정책들을 대통령이 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진행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사기”라는 트럼프 #미 환경에너지 정책 퇴행 조짐 #친환경에너지 드라이브 거는 #중국에 에너지 패권 넘어갈 수도

특히 이 중에서도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에너지·기후변화 정책 변화의 문제일 것이다. 평소에 기후변화를 ‘사기’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환경보호청(EPA) 예산 9조3000억원 중에서 1조2000억원을 삭감하고, 1만5000명의 인원 중 상당수를 구조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청장에도 반(反)환경론자이면서 ‘석유산업의 꼭두각시’로 평가되고 있는 스콧 프루이트를 임명했다. 권력서열 3위인 국무장관에 세계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CEO)인 랙스 틸러슨을 임명한 것만 보아도 트럼프 정부의 친석유 정책을 알 수 있다. 유엔에 내는 미국의 자금도 대폭 삭감을 주장해 유엔의 힘을 빼려고 한다. 트럼프는 세계 모든 국가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약속한 파리기후협정에서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취임 후 며칠 만에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이 불허했던 캐나다~미국 간 송유관의 빗장을 풀어주는 행정명령에도 사인했다.

사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에너지 인수 위원장인 토머스 파일이 적은 에너지 정책 리스트에 있는 그대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정책 리스트에는 ① 연방 토지 내 석유·천연가스 개발 확대, 석탄 임대 유예 폐지 ②캐나다 키스턴 XL, 다코타 송유관 사업 재개 ③청정전력계획(CPP) 폐지 ④파리기후협정 탈퇴 ⑤연료 경제표준 되돌리기 ⑥탄소세 폐지 ⑦온실가스가 사람의 건강과 경제성장에 미치는 위험성 재고 등이었는데 ①, ② 번은 진행 중이다.

이런 식이면 머지않아 오바마 정부의 모든 환경에너지 정책이 뒤집어질 상황이 다. 그나마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이 “트럼프는 한 명의 천사와 여러 명의 악마를 가졌다”고 논평한 것이 이해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너지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에 부합할지는 모르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구태의연한 후퇴의 정책이며, 미국의 개척정신과 배치되는 폐쇄적인 정책이다. 특히 청정전력계획을 바꾸는 것 자체가 에너지 패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석유는 유한하고 태양은 무한하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도 모르는 것이다.

미국이 청정에너지를 포기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중국이 된다. 이미 중국은 저탄소, 첨단기술,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세계의 패권을 노리고 있는데 미국의 정책 포기는 스스로 시장과 일자리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놓은 2500만의 일자리는 기존 제조업, 석유산업을 통해서 나올 수 없다. 이 같은 프런티어 산업에서만 나온다.

파리기후협정의 탈퇴도 국제 세계의 흐름을 너무도 모르는 이야기다. 미국이 탈퇴한다고 모두 탈퇴하지 않는다. 교토의정서에서도 미국은 없었다. 파리협정이라고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유럽이나 중국으로 환경 패권이 옮겨갈 것이다. 그리고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국경관세는 미국만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과 개도국들이 후속 파리협정에서 합의하면 미국에만 국경 간 탄소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본다. 약한 자들이 뭉치면 강한 자를 물리친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반(反)이민 정서, TPP 탈퇴, 국경 장벽 설치의 위협은 오히려 미국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미 이란이나 중국 등이 이런 카드를 만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미국이 변한다고 해도 파리협정에 대응하는 한국의 입장은 기존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중국의 환경·에너지 정책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러시아·일본 등과 연대해 동북아 탄소시장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좋다. 동시에 신재생에너지와 환경 산업에 획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고효율 에너지 제품과 친환경 자동차, 친환경 건물 등의 연구와 보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야 일자리와 동시에 새로운 성장 산업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중장기적으로 중국이나 북한, 개도국을 대상으로 비용 효과적인 산림사업 등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 역시 온실가스 감축과 통일 비용의 저감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 시대의 책임감, 즉 자기 자신과 조국 그리고 전 세계에 대한 의무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작금의 미국 정책은 세계에 대한 책임감 없는 바람일 뿐이다. 바람은 흐르는 물을 잠시 흩뜨려 놓을 수는 있지만 물길을 바꾸지는 못한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