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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엄마 마케팅 전도사 … “먹는 장사는 내 아이가 먹을 거라 여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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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조주연 한국맥도날드 대표

최근 현역 군인들 사이에서는 맥도날드 서울역점이 이른 아침부터 빅맥 등 일반 햄버거를 판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지난달 17일 오전 4시부터였다. 이전에는 오전 10시30분까지 햄버거는 팔지 않고 머핀·핫케이크 등 아침식사 메뉴만 판매했다. 배경은 ‘엄마들의 성화’였다. “기차를 타고 군에 면회 가야 하는데 아들이 좋아하는 빅맥을 사갈 수 없다”는 엄마들의 항의에 맥도날드가 메뉴 판매를 결정한 것이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중 처음이었다.

디자이너 출신 첫 여성 CEO #군인 엄마들 “아침에 빅맥 팔아라” 촉구 #아들 생각해 세계 매장 중 처음 판매 #고기와 새우 넣은 ‘슈비 버거’ 등 히트 #1년에 한 번씩 매장 주방 일반에 공개 #패스트푸드에 대한 불신 많이 없애 #일과 학업·육아까지 병행한 워킹맘 #회사가 일·가정 양립 배려하는 게 중요 #여직원에게 육아휴직 쓰라고 권유

맥도날드 한국법인에서도 이를 놓고 격론이 오갔다. 햄버거 판매 결정을 한 사람은 한국맥도날드 조주연(48) 대표. 그에게 이유를 묻자 “내 아들도 열아홉 살이라 군인들이 아들 같았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한국맥도날드 사옥에서 조주연 대표를 만났다. 조 대표는 글로벌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 한국법인 한국맥도날드 최초의 한국인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쇠고기와 새우를 동시에 넣어 인기를 친 ‘슈비 버거’나 영화 미니언즈 캐릭터를 넣은 해피밀 세트 등이 그가 기획한 것들이다. 이하는 조 대표와의 일문일답(괄호 안은 편집자 주).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한국맥도날드 사옥에서 만난 조주연 대표. “유학과 계약직 컨설턴트를 병행하던 중 아이를 낳아 육아휴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만뒀다”고 회고했다. 그는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여직원들에게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권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최정동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한국맥도날드 사옥에서 만난 조주연 대표. “유학과 계약직 컨설턴트를 병행하던 중 아이를 낳아 육아휴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만뒀다”고 회고했다. 그는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여직원들에게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권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최정동 기자]

한국맥도날드 최초의 한국인 여성 CEO다.
“한국법인에서는 내가 여성 최초인데, 아시아권만 하더라도 여성 CEO가 꽤 있다. 중국·홍콩·대만·일본 법인의 CEO가 모두 여성이다. 다들 친하게 지내면서 정보 교류도 활발히 한다.”
마케터 출신 CEO지만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로서의 경험이 마케팅에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소위 ‘먹는 장사’에서 ‘내 아이가 먹을 것을 판다’는 인식보다 더 중요한 명제가 어디 있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힘을 준 프로젝트 중에 주방 공개 행사가 있다. 1년에 한 번씩 맥도날드 매장의 주방에 일반 고객이 방문해 현장을 실사하게 하는 것이다. 엄마와 자녀가 함께 맥도날드의 재료로 버거를 만들어 보는 행사도 했다. 어떤 양상추를 쓰는지, 패티의 질은 어떤지 그 자리에서 만져보고 또 먹어볼 수 있게 했다. 패스트푸드에 대한 불신을 많이 없앨 수 있었다.”
다른 나라 엄마 소비자들은 어떤가.
“한국과 비슷하다. 내 아이가 먹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한국과 미국, 중국 소비자가 다를 수 없다. 물론 한국 엄마들의 지적이 좀 더 날카롭고 까다롭다.”
아이를 키우면서 학업과 일도 병행했다고 들었다.
“박사과정 유학과 계약직 컨설턴트(아서앤더슨)를 병행하던 중에 출산해 육아휴직은 못 썼다. 출산 후 일·학업·육아 세 가지를 다 할 수 없어 일을 포기했다. 당시 인텔의 인트라넷 구축을 맡았는데, 매주 월요일에는 비행기를 타고 동부 지역에 갔다가 금요일에는 학교가 있는 시카고로 돌아와 공부했다. 출산 후에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연구실로 돌아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경험 때문에 육아휴직을 강력히 권하고 있다. 현재 한국맥도날드 본사 여직원 중 14명이 출산을 했고, 그중 13명이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모두 썼다. 1명은 출산휴가만 썼다. 육아휴직(1년)을 꽉 채워서 쓰라고 권유하는데, 아직까지는 육아휴직 사용 기간이 평균 7개월에 그쳐 아쉽다.”=

아기만 키워도 시간이 모자랐을 텐데.
“그렇다. 정말이지 데이케어센터(미국식 어린이집)가 없었다면 박사를 포기했을 것 같다. 스스로 잘 커준 아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많다.”
학부모 모임에 나가 본 적은 있나.
“적어도 매 학년 초에 있는 학부모 모임은 무조건 나갔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워킹맘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2000년대 초 모토로라 미국 본사에서 일할 때다. 아이가 놀이터 정글짐(나무나 철봉을 가로·세로로 엮어 아이들이 오르내리게 만든 놀이기구)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연락이 왔다. 급히 퇴근하고 병원으로 운전하러 가는 내내 울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 보니 아이가 해맑게 TV를 보면서 놀고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여성 CEO로서 맥도날드는 여성에게 어떤 직장이라고 보나.
“굳이 여성뿐 아니라 전 직원에게 공평한 기회와 좋은 복지를 주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제도적으로 남녀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일·가정 양립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맥도날드 직원의 50% 이상, 임원의 30%가 여성이다. 본인이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 근무하는 유연근무제도 적용하고 있다. 주부 크루(매장 아르바이트)가 1600명 근무한다. 크루에게도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은 물론이고, 육아휴직과 출산휴가까지 쓸 수 있다.”
자료: 맥도날드

자료: 맥도날드

패스트푸드 대표인데 사무용 가구회사 헤이워스를 거친 점이 이채롭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및 신흥시장 마케팅을 총괄했다. 거기서는 의외로 ‘땅 보는 법’을 배웠다. 세계 3위 사무용 가구 회사라 전 세계에 고객사가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어떤 도시가 뜨고, 어떤 업종이 잘되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지금도 맥도날드의 신규 점포 운용 방식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료: 맥도날드

자료: 맥도날드

한국에서 패스트푸드가 위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자체 조사 결과 한국 햄버거 시장은 전체 외식 시장의 성장률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맥도날드에서도 한국은 이탈리아·스위스·러시아·중국 등과 더불어 고성장 국가로 분류된다.”(최근 5년간 맥도날드의 크루(매장 직원) 숫자는 1만7227→1만8950→2만22→1만9014→1만9714명으로 변해 왔다. 매출은 비공개다.)
한국 법인 매각에 나선 이유는.
“매각보다는 파트너 영입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전 세계 120개 진출 국가 중 80곳이 마스터프랜차이즈(파트너사 한 곳과 계약하고, 그 파트너사가 가맹점을 운영) 방식이다. 남미는 22개국 전체를 한 곳의 파트너사가 운영하고 있다. 맥도날드의 근간은 가맹사업이다. 매각보다는 동업자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달라.”
한국에서는 어떤 사업이 유망한가.
“서비스업을 꼽고 싶다. 한국은 고객들이 독보적으로 까다로운 시장이다. 모토로라에 다닐 때도 본사가 한국의 고객 컴플레인(불만) 수준을 ‘세계 톱’으로 규정했었다. 한국에서 먹히는 서비스 수준이라면 해외 어디서나 성공한다. 또한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먹거리 사업도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수출이 유망한 한국 식재료를 고르자면 딸기를 추천한다. 각국 맥도날드 임원들이 방문하면 ‘이런 맛있는 딸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면서 극찬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햄버거 회사 사장도 햄버거를 자주 먹는지가 궁금했다. 조 대표는 “3일 전에 직원들과 점심으로 먹었다”고 답했다.


◆조주연=1969년생. 이화여대(생활미술학)와 고려대 석사과정(산업디자인)을 졸업한 뒤 LG전자 디자인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일리노이공대에서 디자인전략기획 박사학위를 받았고, 모토로라 한국법인 마케팅 이사, 미국 본사 마케팅 상무를 지냈다. 2011년 한국맥도날드 마케팅 전무로 영입돼 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1월 한국 대표에 선임됐다.

[S BOX] 한국선 불고기 버거, 중국선 드래건 트위스터, 일본선 데리야키 햄버거 인기

한국의 대표 버거하면 ‘불고기 버거’를 빼놓을 수 없다. 맥도날드·버거킹·롯데리아 모두 불고기 버거를 판다. 치킨이 기본인 KFC도 ‘치킨 불고기 버거’를 판다. 불고기 버거와 함께 맥도날드의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와 슈비 버거, 버거킹의 통새우 스테이크 버거와 콰트로 치즈 와퍼, KFC의 타워 버거와 치즈멜츠 타워 버거 등이 인기 로컬 메뉴로 꼽힌다.

로컬 메뉴란 글로벌 패스트푸드점들이 진출 국가의 특성에 맞춰 출시한 ‘현지 메뉴’다. 불고기 버거의 원조는 한국 패스트푸드 업체인 롯데리아다. 1980년 새우 버거, 1992년 불고기 버거를 출시했다. 롯데리아는 모차렐라 치즈를 패티로 만든 모차렐라 인 더 버거, 국산 한우로 만든 한우 불고기 버거 등을 판다. 새우 버거와 불고기 버거는 국내 롯데리아 버거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며, 베트남 등 해외 롯데리아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KFC는 치킨을 토르티야에 싼 간판 메뉴 ‘트위스터’를 말레이시아에선 일본풍을 가미해 ‘와사비 트위스터’(와사비와 쌀 가미)로, 중국에서는 닭고기에 북경오리 (베이징 카오야) 소스를 가미해 만든 ‘드래건 트위스터’로 현지화해 판다. 일본에서는 데리야키 햄버거 스테이크 버거도 판매된다.

때로는 햄버거뿐 아니라 쌀이나 국수 등의 메뉴를 파는 경우도 있다. 중국 맥도날드에서는 국수를 판매하고, 인도네시아 롯데리아에선 쌀밥+치킨+음료 세트인 ‘만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돼지고기 식용이 금지되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현지에 특화된 메뉴를 새로 개발해야 한다. 롯데리아는 2011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면서 쇠고기 메뉴와 크리스피 치킨, 핫스위트 치킨 등 6종류 닭고기 메뉴를 새로 개발했다.

글=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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