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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룰이 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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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IOC는 최근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전문을 보내 사태의 전말을 파악, 통보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IOC위원 접촉설이 유럽 IOC 위원들의 입을 통해 불거지자 부산시는 '선진 도시들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유럽 스포츠 리더들을 만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KOC 조사에 의하면 부산시 관계자들은 IOC위원들이 묵고 있는 호텔방에 과일바구니와 기념품 등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지 않아도 일부 위원의 비리 문제로 민감해진 IOC 입장을 감안할 때 자칫 부산 유치가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스포츠는 룰이 생명이다. 룰을 위반하면 반칙이 선언되고 이에 따른 제재가 따른다.

그러나 한국스포츠계는 지도자들부터 규칙을 위반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툭하면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조사받기 일쑤이고, 일선 지도자들의 경우 학부모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아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경기력에서는 세계 10강이지만 룰을 지키는 준법성에서는 전형적인 후진국 모습이다. 왜 그런가.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초.중.고교 체육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스포츠를 가르친다. 체조.수영.육상 등 개인종목에서부터 축구.농구.배구 등 단체종목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목을 접하도록 배려한다.

이는 학생들의 몸을 튼튼하게 해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스포츠의 룰을 익힘으로써 학생들에게 주는 교육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축구경기를 통해서는 공을 손으로 잡을 수 없다든가, 농구는 슛을 하는 상대에게 반칙을 하면 자유투를 허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포츠에서 규칙을 배우고, 어겼을 경우 벌칙이 주어진다는 것을 저절로 익히게 된다.

한국 학원스포츠의 현실은 어떤가.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 때문에 중.고교 체육시간은 어느새 선택과목으로 바뀌어 학교체육시간을 통한 스포츠활동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그나마 선택한 체육시간도 내신 성적의 정확성을 기한다는 명목하에 농구 슛을 몇 개 넣었는지, 배구 토스를 몇 개 했는지 등을 따지는 데 그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상식과 민주적 질서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마침 대한체육회 혁신위원회(위원장 임번장 서울대 교수)가 학교체육활성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내용을 보면 교육인적자원부 내에 학교체육위원회 및 학교체육과를 신설해 학교체육 기본방침을 수립하고, 자율체육 활동 등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학생체력 증진, 학교체육시설 확충, 학교운동부 정상운영 등도 포함돼 있다. 대학입시 준비로 체력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운동 기회를 늘려주기 위해 법정 체육수업 시간을 세 시간으로 환원하는 것도 주요 골자다.

이와 함께 전문 운동선수들도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기틀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운동선수들은 지도교사와 감독.코치로부터 인격 모독은 물론 구타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또 학교 수업시간을 걸러가며 운동에만 매달려도 교육 당국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낙제하는 운동선수가 없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심지어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가 학점을 주지 않아도 학교 측이 학점을 주는 곳도 있다. 해외에서 활약하며 국내 대학의 학위를 따낸 프로골프선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학원체육의 정상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성백유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