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지막 '학사 교수' 서울대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대한민국 최고의 석학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격려받으며 무난히 소임을 마쳤습니다."

서울올림픽 공식 엠블럼과 휘장을 제작한 서울대 디자인학부 양승춘(65.사진) 교수가 이달 말 정년 퇴임한다. 양 교수는 지난 39년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000여 점이 넘는 그래픽 작품을 제작한 한국 디자인계의 거목이다.

그는 서울대 교수 1700여 명 가운데 유일하게 석.박사 학위가 없는 '학사 교수'였다. 양 교수는 1965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당시 설립이 추진되던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려다 과정 신설이 무산되자 광고업계에 뛰어들었다. 66년부터 3년간 OB맥주와 합동통신 등에서 광고기획 및 제작을 하면서 대한민국 상공미전 특선을 세 차례 하는 등 능력을 발휘, 68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임용됐다.

양 교수는 "교수로 임용된 지 1년 만에 대학원 석사과정이 생겼는데 교수가 자기 학교 대학원을 다닌다는 것도 마땅찮고, 유학을 갈까 생각도 했지만 전임강사가 그런 얘기를 꺼낼 분위기도 아니어서 시기를 놓쳤다"고 회고했다.

퇴임 후 양 교수는 '한국의 전통 조형'에 관한 교재 집필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는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전통 조형을 응용해 현대적인 디자인 작품을 창안하는 것을 가르치는 교재"라고 설명했다.

이 교재는 내년부터 한 권씩 총 5권으로 나눠 출간될 예정이며 각 권은 청.적.황.백.흑 등 우리나라 전통의 오방색(五方色) 겉표지로 꾸며진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이 희미해졌다"며 "우리 것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해야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교육에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도전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 편한 길, 남들이 다 간 길로 가지 말고 끝없는 도전을 통해 문화가 꽃피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퇴임의 변을 남겼다.

박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