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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주말에 뭐 볼래?…싱글라이더 vs 문라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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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화관에선
이 영화, 볼만해?

싱글라이더

감독·각본 이주영 출연 이병헌, 공효진, 안소희 촬영 김일연 미술 한아름 조명 김민재 장르 드라마 상영 시간 9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월 22일

줄거리 증권회사 지점장 재훈(이병헌)은 안정된 직장과 반듯한 가족,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는 가족이 있는 호주로 떠난다. 그곳에서 재훈은 다른 삶을 준비하는 아내 수진(공효진)의 모습을 본다.

별점 ★★★☆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 영화 ‘싱글라이더’는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의 한 구절을 스크린에 펼쳐 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시는 이 영화의 모든 걸 관통한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달려가느냐고, 그렇게 달려간 그곳에 원하는 것이 있느냐고. ‘싱글라이더’는 앞만 보고 달려가던 한 남자가 그 길의 끝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후회하는 이야기다.

잘나가던 증권회사 지점장 재훈은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걸 잃는다. 호주로 유학 보낸 아내와 아들 생각이 간절해진 그는 그들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재훈은 아내와 아들이 사는 집 주위를 맴돌 뿐이다. 아내와 이웃집 남자 크리스(잭 캠벨)의 다정한 모습을 보게 된 순간에도, 그는 아내 앞에 나서지 못한다. 그러던 중 호주에서 일해 번 돈을 한순간에 잃은 ‘워홀러’ 지나(안소희)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재훈의 눈빛과 감정에 모든 걸 의존한다. 화려한 기교 없이 잔잔하고 느리게, 그가 삶의 의미를 깨닫고 후회하는 모습을 그려 낸다. 극 중후반까지 별다른 사건 없이 이어지던 영화는, 밋밋하고 지루하다 느껴질 무렵 뜻밖의 반전을 내놓는다. 그 반전은 영화 전체를 곱씹게 하는데, 묵직하고 헛헛하며 아릿한 감정을 길게 남긴다. 강한 액션이 주를 이루던 한국 영화계에 대사의 강박이나 욕설 없이, 공기의 흐름만으로 감정을 일깨우는 ‘순한 영화’가 얼마 만인지. 그 자체로 반갑다.

신예 이주영 감독은 깔끔한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다만 조금 더 긴장감을 살리는 편집이 이어졌다면, 반전 이후 관객의 몰입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병헌의 연기는 이번에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는 눈빛과 표정만으로 절절한 감정을 전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2001, 김대승 감독)의 서인우(이병헌)를 기억한다면, 놓칠 수 없는 영화다. 공효진은 언제나 그렇듯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의 감정에 관객을 끌어들인다.

이 영화의 제목인 ‘싱글라이더(A Single Rider)’는 1인 탑승객, 즉 홀로 떠나는 여행객을 일컫는다. 할리우드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가 ‘밀정’(2016, 김지운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한국영화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 상징적인 몇몇 장면으로 재훈의 처지와 심리를 들여다보게 하는 극 초반의 흡인력은 놀라울 정도다. 그 이후는 좀 아쉽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려는 연출이 절반만 성공한 느낌이다. 장성란 기자

★★★☆ 이병헌이 그리는 고독과 후회가 밀물처럼 가슴을 파고들고, 공효진의 외마디 비명이 썰물처럼 긴 궤적을 남긴다. 이따금 감정을 앞지르는 다소 과한 음악 사용이 아쉬울 따름. 나원정 기자

문라이트

원제 Moonlight 감독 배리 젠킨스 출연 매허샬레하쉬바즈 엘리, 나오미 해리스, 알렉스 R 히버트, 애슈턴 샌더스, 트래반테 로데스 장르 드라마 상영 시간 11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월 22일

줄거리 미국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흑인 아이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이 소년(애슈턴 샌더스)이 되고, 청년(트레반테 로데스)으로 성장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깨달아 간다.

별점 ★★★☆ 배리 젠킨스 감독이 쓴 한 편의 영상시. 흑인이자 게이인 샤이론의 삶을 20년에 걸쳐 총 3장에 나눠 보여 준다. 눈부신 성장영화이기도 하고 서정적인 멜로영화이기도 하다.

성(性)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고 차별과 공격을 받는 샤이론의 삶이 종으로 펼쳐지면, 마약과 범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미국 내 흑인들의 이야기가 횡으로 교차한다. 그렇다고 해서 ‘문라이트’가 인종 차별을 다룬 수많은 흑인 영화처럼 비관적이고 어두운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무치게 아름답다. 샤이론의 곁엔 “흑인은 어디에 가도 있어. 우린 지구 최초의 인간이니까”라고 북돋워 주는 후안(매허샬레하쉬바즈 엘리) 아저씨가 있고, “너는 약하지 않아. 그걸 보여 줘”라고 말하는 친구 케빈(제이든 피너)이 있다.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달빛과, 그 아래 출렁이는 마이애미의 바다가 있다. 달빛 아래에선 흑인 소년도 백인 소년도 파랗게 보일 뿐이다.

샤이론의 삶은 고단하고 남루했지만, 사랑과 연대가 그를 어른으로 키워 냈다. 소년은 그렇게 자랐다. 이 영화는 무언가를 강변하지 않는다. 그저 장면 장면을 시처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샤이론의 대사에서 감동이 밀려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누구 하나 모자람이 없는데, 특히 샤이론의 엄마로 등장하는 나오미 해리스의 연기가 뛰어나다.

23 아이덴티티

원제 Split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안야 테일러 조이, 베티 버클리, 헤일리 루 리처드슨 장르 공포, 스릴러 상영 시간 11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월 22일

줄거리 10대 소녀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는 두 친구와 함께 괴한에 납치된다. 그의 정체는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케빈의 정신과 주치의 플레처(베티 버클리) 박사는 케빈의 인격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걸 직감한다.

별점 ★★★☆ 다중 인격을 소재로 한 스릴러영화는 그동안 종종 있었다. ‘프라이멀 피어’(1996,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 ‘아이덴티티’(2003, 제임스 맨골드 감독)처럼, 이들 범죄·스릴러영화는 주로 ‘결국 몸을 지배한 인격은 누구였나’를 반전 장치로 사용하곤 했다. ‘23 아이덴티티’ 역시 비슷한 자장 안에 있다. 다만,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여러 인격이 한 사람에게 존재할 때,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기 때문.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여러 정신과 의사들을 취재하며 각본을 완성시켰다. 인간의 잠재력을 다룬다는 면에서, 그의 초기작 ‘언브레이커블’(2000)과 깊은 관련이 있는 영화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신들린’ 연기가 단연 빛난다. ‘원맨쇼’라 해도 될 만큼, 그는 배우 인생을 통틀어 손에 꼽힐 만한 명연을 선보였다. 여러 인격을 자유자재로 번갈아 가며 연기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이 압권. 신예 안야 테일러 조이는 청초하되 강단 있는 매력으로 ‘차세대 호러퀸’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애프터 어스’(2013) 등 근작들의 참혹한 흥행 실패로, 샤말란 감독은 오랜 시간 ‘감을 잃었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23 아이덴티티’는, ‘식스센스’(1999)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한 그 방식 그대로 참신하고도 탄탄한 심리극을 펼친다. 전작 ‘더 비지트’(2015)가 샤말란 감독의 스타일에서 미묘한 변주를 시도한 ‘몸풀기’였다면, ‘23 아이덴티티’는 왕위를 빼앗긴 왕자가 대군을 이끌고 돌아온 듯한 회심작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자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이, 샤말란 감독의 부활을 인정해야 할 때라는 것을.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 ‘식스센스’ 급은 아니나, 인물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집요함,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능력만큼은 여전히 탁월하다. 여기에 맥어보이 인생 최고의 열연을 보는 즐거움까지. 백종현 기자

★★★☆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호러 거장 M 나이트 샤말란 감독과 못하는 연기가 없는 ‘연기 알파고’ 제임스 맥어보이의 찰떡 컬래버레이션.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루시드 드림

감독 김준성 출연 고수, 설경구, 박유천, 강혜정, 박인환 장르 SF, 스릴러 상영 시간 10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월 22일

줄거리 가진 자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를 써 온 기자 대호(고수)는 어린 아들 민우(김강훈)를 눈앞에서 납치당한다. 그로부터 3년 뒤,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대호는 루시드 드림(자각몽)을 통해, 민우를 잃은 날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쓴다.

별점 ★★ 자신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루시드 드림(Lucid Dream·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채로 꾸는 꿈)’, 나아가 다른 사람의 꿈으로 들어가는 ‘공유몽(共有夢)’을 통해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는 설정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국면이 바뀌는 순간, 그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한다. 장면마다 중요한 정보와 뉘앙스를 인상 깊게 새기는 연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꿈과 현실을 바쁘게 오가는 대호의 모험담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한국 SF의 갈 길은 여전히 먼 것인가. 장성란 기자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감독 케네스 로너건 출연 케이시 애플렉, 미셸 윌리엄스, 카일 챈들러 장르 드라마 상영 시간 13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월 15일

줄거리 아파트 관리인 리(케이시 애플렉)는 형 조(카일 챈들러)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향 맨체스터로 향한다. 그러나 형은 이미 운명한 뒤다. 유언에 따라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지목된 리. 그에겐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과거가 있다.

별점 ★★★★ 평범했던 한 남자가 철저한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는 삶의 풍경을 섬세하고 배려 깊게 그려 낸 수작. 서서히 드러나는 처참한 과거는, 리의 무기력하고 도피적인 성격을 모조리 설명해 주고도 남는다. 형을 잃고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며 조카를 보살피려 애쓰는 그는, 다시 살아 보려 발버둥치고 있는 듯 보인다. 곳곳에 배치된 해학적인 순간들은 극 전반의 일상성에 적당한 균형감을 부여한다. 신인 루카스 헤지스의 담백한 연기가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 숨통을 틔워 준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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