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만능 시대의 범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의 세태중엔 이른바 「권력층」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습성이 있다. 법규나 행정예규쯤은 우습게 알고 시체말로 「한건」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 때문이다. 그래서 특권층을 빙자, 또는 사칭한 범죄가 실제로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대검이 29일 발표한 억대 사기사건도 이런 유형의 범죄중에 하나다. 성직자라는 목사들까지 낀 이들 사기단은 고위층의 서명을 위조하고 기관원을 사칭하면서 이권을 주겠다고 속여 4억여원을 가로챘다.
이번 사건은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둔 전환기의 행정적 해이와 사회분위기의 이완등을 틈탄 범죄라는 점에서 당국과 국민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요즘은 정책과 행정의 선심공세와 이를 기화로 사리와 사욕을 챙겨 보겠다는 심리가 꿈틀대는 정치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기범죄가 가능한 것은 사회기풍의 부조리에 근본적인 바탕을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기꾼이 권력층을 빙자하면 쉽게 범행에 성공한다고 생각하고, 사기당한 사람이 권력층이라면 탈법과 불법으로라도 특정인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한 것은 바로 권력층 자신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극히 일부에 국한된 얘기겠지만 권력층이 암암리에 직권을 남용하거나 직무상의 비밀을 악용하여 특정인에게 특혜를 준 사례가 전혀 없다면 이런 인식은 애시당초 없었을 것이며, 이런 사기범죄도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에 행정이 완전히 공개적이고 원리원칙을 지켰더라면 누가 감히 이런 범죄를 아이디어로 삼을 수 있었겠는가. 음습한 구석이 없으면 세균 자체가 서식할 수 없는거나 같은 이치다.
이런 사기에 넘어 가는 사람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익을 눈앞에 놓고 무관심할 만큼 모든 사람이 생불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그 렇다고 탈법·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배타적인 특혜를 노리는 심리는 결코 온당치 않다.
떳떳하지 못한 이익을 꾀하는 것 자체는 도덕적으로도 지탄방아 마땅하다. 비합법적인 이익을 노리는 것이나 이를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일이나 피장파장이요, 오십보 백보가 아니겠는가.
이런 고위층 빙자, 기관원 사칭 따위 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고위층」이라는 말이 풍기는 초법적인 특권냄새를 불식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권력이란 모든 일을 법대로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국민으로부터의 수임권한이지 자기 멋대로 행정을 휘두르는 특권이 아니라는 인식을 당사자들이나 국민들이 철저히 가다듬어야 한다.
그것이 곧 사회기강을 바로 세우고 굳건히 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