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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출범인데 ‘돈 걱정’하는 인터넷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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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보기술과 금융의 결합으로 기대를 모았던 인터넷전문은행이 결국 ‘반쪽짜리’로 영업을 시작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달 출범에 맞춰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장벽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을 하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자본 의결권 지분 4%로 제한’ #은산분리 개정 놓고 국회 공청회 #여권 “규제 완화” 야당 “특혜 안돼” #증자 안되면 정상적인 영업 어려워 #케이뱅크 “돈 없어 대출 못할까 걱정”

케이뱅크 직원들이 출범을 앞두고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사진 케이뱅크]

케이뱅크 직원들이 출범을 앞두고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사진 케이뱅크]

국회 정무위원회는 20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관련 법안을 논의했다. 현재 은행법은 대기업 등 산업자본은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10% 한도(의결권 지분은 4%)로 소유토록 제한한다. 은산분리 규제다. 국회에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은행에 한해 이 한도를 34~50%로 늘려주자는 은행법 개정안 2건과 특례법 제정안 3건이 지난해 발의돼 계류돼있다.

인터넷은행

인터넷은행

정무위 차원에서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와 관련해 공청회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1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가 3월 중 영업을 개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치권의 움직임이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는 여야 간 적지 않은 의견 차이를 확인했을 뿐 진전은 없었다.

공청회에서 범여권 의원들은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김용태 의원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아예 입구를 틀어막아버리는 건 곤란하다”며 “일단 (ICT 기업이) 들어가게 해주고 문제가 있으면 출구에서 잘못된 것을 잡아내 엄벌에 처하자”고 말했다. 진술인으로 참석한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도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한다는 우려는 자금이 모자라던 시절의 오래된 이야기”라며 “은산분리는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주주에 대출을 금지하는 식의 안전장치를 두면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화 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심성훈 케이뱅크 대표는 “기존 은행의 규제의 틀인 ICT와 금융이 융합된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진흥 차원에서 접근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인터넷은행에 대한 특혜론·회의론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은 “현행법 체계 아래 인터넷은행을 도입하는 건 찬성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일부 기업에 특혜를 몰아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은 “기업 대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인터넷은행이 기존 은행과 업무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예외를 인정하면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터넷은행에 한해 은산분리를 완화하더라도 향후 일반 은행에 대해서도 은산분리 원칙이 무너지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야 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사실상 이번 회기 내에 합의를 이뤄서 법안을 처리하긴 쉽지 않다. 3월 2일로 예정된 본회의까지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현 은행법 체제에서 1년 정도 사업진행을 지켜본 뒤에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논의하자”는 의견을 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두 인터넷은행이 안정적으로 영업을 하려면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며 “정무위가 논의를 시작했으니 이번 회기는 아니더라도 4월에 열릴 임시국회 때 속도감 있게 논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케이뱅크는 은산분리 규제 하에서 영업을 시작해야 한다. 현재 산업자본인 KT의 케이뱅크 지분율은 8%에 그친다. ‘ICT의 힘을 극대화한 100% 비대면 종합은행’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케이뱅크는 통신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를 통해 신용등급 4~7등급 고객에게 10%대 초반의 중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 사업모델로 한다. 다만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준수하면서 대출영업을 하려면 초기 3년 간 2000억~3000억원의 증자가 필요하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법 개정이 되지 않아서 대고객 영업을 시작하고도 증자를 못하면 자칫 ‘돈이 없어서 대출을 못합니다’라고 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전했다.

카카오뱅크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카카오뱅크는 다음 달 중 본인가 승인을 받으면 실거래 테스트를 거쳐 상반기 중 영업을 시작한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와 연동해서 애플리케이션(앱) 하나로 공인인증서 없이 모든 금융거래가 가능토록 하는 ‘원앱 전략’을 추구한다. 카카오가 주도가 돼 ‘모바일은행’의 혁신을 이끈다는 계획이지만 카카오의 지분율은 10%에 그친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영업을 시작해서 자산이 늘어나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증자가 필수”라며 “인터넷은행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은산분리 규제와 관련한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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