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경관 조작사건 판결문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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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박종철군올 고문치사케한 범인들을 축소조작· 도피시켰다는 공소사실을 부인하고있으나 조한경등 고문경관 5명의 증언과 피고인들의 검찰진술조서 및 사건직후 유정방· 박원택 피고인이 현장에 갔었던 점, 같은 날 하오3시 박처원 피고인이 대공수사단장실에 들러 박군이 고문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점, 그 이후 사고경위에 대한 행정보고서가 작성됐고 조 경위등에게 보고서 내용대로 진술토록 연습시킨 점등을 종합해 볼때 공소사실은 모두유죄로 인정된다.
피고인들은 계속 박군의 자세한 사망경위를 몰랐다고 변소하고 있으나 이를 인정키 어렵다.
피고인들의 양형에 관하여 판단컨대 민주국가에서 고문은 결코 있어서 안될 일이며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경찰간부로서 마땅히 엄정수사해 범인을 가려낼 의무가 있음에도 가능한한 이를 은폐하려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고문에 대한 감각이 크게 둔화돼있었음을 나타낼뿐 아니라 건전한 양식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크게 비난방아야 할 것이다.
더우기 고문치사사건으로 땅에 떨어진 경찰의 위신과 공권력에의 신뢰감은 이 사건축소모의로 더욱 실추됐다고 할 수 있다.
대학생이 수사를 받던중 숨졌는데도 당초 사건상을 몰랐고 수일이 지난후에도 이를 파악치 못했다는 피고인들의 변소는 수사경찰관으로서 결코 취할바가 못되며 이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범인도피죄는 3년이하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형법상 가벼운 범죄이고 피고인들이 개인적 욕심이나 치부를 위해 저지른. 일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 사건 범행이 한명의 부하라도 덜 희생시키겠다는 상급자로서의 인간적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고 이미 고위공직자 여러명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 박군의 원혼도 어느정도 위로 받았을 것이다.
피고인 박원택은 20년, 유정방은 25년, 박처원은 40여년이상을 경찰관으로 근무해오며 각종 표창과 훈장을 받았다.
명예와 권력추구는 인지상정인데도 평생을 음지인 대공분야에 몸바쳐 많은 공을 세웠다는 점을 감안할때 피고인들의 죄는 밉다해도 이같은 점을 양형에 참작치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이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제적 손실과 함께 평생동안 쌓아올린 공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무너져버려 공무원으로서는 유죄판결 자체가 상당한 처벌이 된다.
책임의 경중을 볼때 축소모의과정에 대해 피고인들이 계속 함구하고 있어. 각자의 책임을 밝혀내 양형의 자료로 삼을 수 없지만 이 사건 범행이 경찰조직속의 범주였다는 점에서 최상급자가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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