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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실질적 감축은 처음|미-소 외상회담 합의의 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4일간 워싱턴에서 열렸던 미소외상회담으로 양국 무기협상 역사상 최초로 특정범주의 핵무기제거에 합의하는 한편 14년만에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실현시킬수 있게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핵감축협상결과가 핵배치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는 핵무기의 증가를 가져온데 비해 이번 합의는 처음으로 감축을 가져오게 된것이다.
「슐츠」미국무장관과 「세바르드나제」소외상은 18일 회담결과에 관한 공동성명을 통해 중·단거리핵무기(INF) 제거협정에 원칙합의했고 이협정의 조인들을 위한 양국정상회담이 이번 가을 워싱턴에서 열리며 이의 사전준비를 위해 「슐츠」장관이 10월하순 모스크바를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협정이 발효되면 미소양국은 전세계에 배치해놓은 사정거리 5백∼5천5백km의 중·단거리핵미사일을 철거하게된다. 미국의 경우 서독·영국·이탈리아·벨기에에서 소련을 향해 겨냥하고있는 3백32기가 해체된다. 소련은 서구를 조준하고있는 5백12기와 한국·중공·일본을 겨냥한 시베리아의 1백71기를제거한다.
그러나 이같은 범주의 중·단거리핵무기가 제거된다고해서 인류가 안고있는 핵위협이 전폭 감소되는것은 아니다. 이협정은 핵무기감축의 시작일 뿐이다. 왜냐하면 2천여기미만의 중·단거리핵무기는 양국이 보유하고있는 5만여 핵탄두의 4%에 불과한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거리미사일중에도 고도의 명중률을 갖춘 미국의 퍼싱Ⅱ미사일과 크루즈미사일이있고 소련쪽에는 1개 미사일마다 3개 핵탄두를 갖춘 위험한무기가 있다.
양국은 비록 중거리핵을 없앤다해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공중발사 크루즈미사일(ALCM)등 가공할 장거리전략핵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같은 장거리 무기에 대한 협정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고있다.
이번 외상회담의 타결을 앞두고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서기장은 여세를 몰아 전략핵감축도 성사시킬수있을것 같다고 호언했고 「레이건」미대통령도 퇴임전 이를 성사시켜 역사에 남는 업적을 노리고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것 같지않은 전망이다.
이번 합의는「레이건」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서기장의 정치적 결의로 가능했다.
잔여 임기를 불과 5백일 남겨놓고 다수야당민주당의 도전과 이란-콘트라스캔들로 궁지에 몰려있는 「레이건」대통령은 자신의 실세 회복에도 우선 필요하고 88년대통령선거에 나서는 공화당후보도 뒷받침해줄 호재를 이번 INF합의에서 찾겠다는 생각이다.
「고르바초프」서기장으 로서도 계속 처지고있는 민간부문에 예산을 돌릴수있는 여유를 얻고 대서방관계개선을 통해 국내 경제개혁에 노력을 집중할수있다는 현실적 동기에서 합의를 추진해왔다.
엄청난 국방비와 계속적인 민간부문의 후퇴를 한꺼번에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기감축이다. 소련이 대담한 외교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이와같은 불가피한 경제적·정치적 전략이 담겨있다.
이번 합의가 갖는 국제정치 분위기 면에서의 영향은 매우 크다.「카터」시대 이래 지극히 냉각되었던 미소관계는 이번 합의로 다시 화해무드로 일전했으며 그여파는 한반도·아프가니스탄등 두 강대국의 각축이 접점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 긍정적으로 나타날것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로 88서울올림픽의 소련 블록 참여 전망도 훨씬더 밝아졌다고 볼수있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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