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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재미보는 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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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에드 루샤가 1962년 완성한 》여덟개의 빛이 비추는 거대한 표석’. 그는 현대 팝아트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주유소, 거리의 간판, 쭉 뻗은 도로 등 미국 문화의 상징적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다양한 의미를 드러낸다.

영국 런던의 청담동이라 할 수 있는 하이드파크에 사는 필립 호프먼(44)은 최근 팝아트의 거장 에드 루샤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의 작품들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을 정도로 인정을 받는다.

호프먼이 그림을 사들인 것은 백만장자의 호사가 아니다. 그는 2004년말 영국에서 출범한 아트펀드 운영회사인 '파인아트 펀드'의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루샤의 작품으로 펀드를 만들어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루샤의 어떤 그림을 얼마에 구입했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최소 25만 달러 이상 3년간 예치해야 자신의 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고 공개했다.

그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 지난 10년 사이 6배는 뛰었다"며 "예술 애호가 차원이 아니라 철저히 수익을 보고 미술품을 사고 판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전문 아트펀드가 10여개에 이르는 등 뉴욕의 월가에 투자 목적의 미술품 거래가 활발하다고 보도했다. 2004년 8월, 미술품 컬렉터이면서 20년 이상 메릴린치 증권에 근무한 브루스 톱이 뉴욕에서 '펀우드(Fernwood)미술품 투자회사'를 설립한 이후 크게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가격의 등락폭이 심하고 거품이 많기 때문에 미술품 거래엔 도박과 비슷한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그림에 과학적 투자 가능할까=미술품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다우존스나 S&P500처럼 지수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미술품은 개인의 기호가 반영되는 특수한 상품이라 계량화가 힘들다.

뉴욕의 한 갤러리 관계자는 "미술품을 콩.옥수수처럼 상품화할 수는 없다"며 "1970~80년대만해도 모네.르노와르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선호했으나 이제는 리처드 프린스 같은 현대 작가들이 더 인기 있다"고 말했다.

미술품 가격이 이미 치솟을 대로 치솟은 것도 문제다. 요즘은 거장들의 작품이 보통 몇 천만달러를 호가한다. 200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선 피카소의 작품이 1억416만8000달러에 팔렸다.

그래서인지 자금력이 있는 기관 투자가들도 선뜻 나서기 어려워 한다. 계량화나 시장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ABN암로 은행은 지난해 5월 결국 미술품 시장서 결국 손을 뗐다. 은행 관계자는 "미술품 가격 등락폭이 너무 크며 또 예측하기 힘들다"며 "일본 경제가 무너지자 8250만 달러에 팔렸던 고흐 작품이 폭락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국내 아트펀드 뿌리내릴까=하나은행은 다음달 8일 국내 양대 경매사의 하나인 K옥션과 공동으로 '미술품-떠오르는 투자 대안'이란 제목으로 설명회를 연다. 아트펀드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적은 돈으로 그림에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펀드 조성이 끝난 후 그림을 매입하고 다시 되팔아 수익을 올리기까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아트펀드의 특성상 한국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인의 투자 성향을 고려할 때 만기 10년짜리 펀드에 가입할 투자자가 얼마나 될 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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