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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 금리 제로 시대] 2억 맡기면 월 62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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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98년 9월 다니던 공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명예퇴직한 李모(60)씨.

퇴직금 2억원을 시중은행의 3년 만기 정기예금에 넣어 매달 1백52만원의 이자(연리 11%) 수입으로 그런대로 살았다. 가끔 외식도 하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다녔다. 그런 생활은 예금이 만기가 된 2001년 9월 끝났다. 금리가 연 5.4%로 뚝 떨어진 것이다.

"고민 끝에 1년짜리 정기예금을 들었어요. 1년 뒤엔 혹 사정이 나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월 수입은 75만원으로 줄었다. 3년 전의 반토막이었다. 다시 1년이 지나자 금리는 4.5%로 더 떨어졌고, 월 이자는 62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 사이 소비자 물가는 꿈틀꿈틀 올라 99년 0.8%에서 이제 4%대를 오르내린다.

"아파트 평수를 줄여 수도권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노후의 꿈은 커녕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됐어요. 자식들 결혼시키고 이것저것 하면 머지않아 원금을 다 까먹고 백수가 될 판인데,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자니 위험 부담이 크고 전문 지식은 하나도 없고…."

실질금리 0%대. 예금금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빼고 나면 거의 한푼도 남지 않는 시대다.

7월 말 기준 정기예금 이자율은 4%선. 10%대이던 외환위기 무렵의 절반도 안된다. 이자소득세율 16.5%를 빼고 나면 실수령액은 3.34%.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상반기 평균 3.6%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은행에 맡겨두고 이자로 노후를 살아가려던 李씨 같은 사람들의 생활도 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98~99년 IMF 직격탄을 맞은 '명퇴자'는 ▶공무원 4만6천7백1명▶공기업 3만2천2백57명 등 공공 부문에서 10만명이 넘는다. 금융 부문도 3만9천여명.

대부분은 재취업이 안돼 퇴직금을 밑천삼아 이자생활자로 변신했다. 이들을 포함한 이자생활 인구는 어림잡아 수백만명대. 통계청의 2002년 경제활동인구 연보를 분석한 결과다.

'고율 이자''고액 배당'을 내세운 사기꾼들도 이들은 피해가야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사기사건은 18만3천3백37건. 경기 침체 여파로 전년보다 8%가 늘었다. 투자나 고금리 사기 피해액이 1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이자생활 시대는 끝났다. 문제는 그럼에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5월 말 서울시의 '하이 서울 실버 취업박람회'를 찾은 金모(55)씨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막일이라도 하는 수밖에…"라며 한숨을 쉬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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