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학생부군과의 밥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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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학생부군과의 밥상’ - 박남준(1957∼ )

녹두빈대떡 참 좋아하셨지
메밀묵도 만두국도
일년에 한 두어 번 명절상에 오르면
손길 잦았던 어느 것 하나
차리지 못했네
배추된장국과 김치와 동치미
흰 쌀밥에 녹차 한 잔
내 올해는 무슨 생각이 들어
당신 돌아가신 정월 초사흘
아침밥상 겸상을 보는가
아들의 밥그릇 다 비워지도록
아버지의 밥그릇 그대로 남네
제가 좀 덜어 먹을게요
얘야 한 번은 정이 없단다
한 술 두 술 세 숟갈
학생부군 아버지의 밥그릇
아들의 몸에 다 들어오네
아들의 몸에 다 비우고 가시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아침 밥상 겸상을 손수 차린 아들이 여기 있다. 넉넉하지 않은 소박한 밥상을 차려, 없는 아버지를 밥상 맞은편에 모셨다. 어느 아들, 딸이 한 술의 밥조차 삼킬 수 있겠는가? 밥 식기 전에 어서 어서 먹으라던 생전의 아버지를 지금 내 눈 앞에 모셔 놓고서.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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