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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삼성 “과도한 단죄 … 여론 밀려 영장 발부될까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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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특검, 이재용 영장 재청구 … 내일 실질심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15시간이 넘는 고강도 조사를 받은 뒤 14일 오전 1시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곧바로 서초동 사옥으로 이동, 심야 대책회의를 가졌다. 특검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해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15시간이 넘는 고강도 조사를 받은 뒤 14일 오전 1시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곧바로 서초동 사옥으로 이동, 심야 대책회의를 가졌다. 특검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해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뉴시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지난달 19일 법원이 영장 청구를 기각한 지 26일 만이다. 이 부회장의 혐의에 재산국외도피 , 범죄수익은닉이 추가됐다. 구속 여부는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의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삼성 “부정청탁 없다” 공식 입장
반기업 정서 우려, 적극 해명 나서
최근 5일 새 반박 자료만 4차례
“내부 긴장감 1차 청구 때보다 심각”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재청구하자 삼성그룹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룹 측은 14일 오후 9시쯤 공식 입장을 냈다. “삼성은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주거나 부정한 청탁을 한 적이 결코 없다. 법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다. 삼성 관계자는 “내부 긴장감이 1차 청구 때보다 훨씬 심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 임직원들은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론 “당혹스럽고 억울하다”는 기류가 팽배하다. 당혹감은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특검 수사의 성패가 삼성 총수 단죄 여부로 모이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더구나 특검이 지난번 영장 기각 이후 4주간 광범위한 보강 조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했다는 점에서도 삼성은 불안해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특검이 ‘마구잡이 소환’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재용 부회장 추가 소환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억울하다고 보는 대목은 최순실 게이트 가운데 기업 연루 부분을 ‘권력의 강요에 의한 금전 편취’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을 국정 농단의 피해자로 만들어놓고 오너 구속까지 나서는 건 과도한 단죄라는 게 삼성의 생각이다.

삼성은 촛불시위 이후 강화된 반(反)기업 정서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특검팀은 영장 재청구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삼성이 공정위로부터 혜택을 받았다는 내용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 금융감독위원회 등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 등을 포함시켰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나 혜택이 있었는지 여부는 증거를 통해 또는 법리상으로도 충분히 해명할 수 있다”며 “그러나 법원이 법리적 판단보다 촛불 민심에 밀려서, 또는 ‘재벌 봐주기’ 논란에 휩싸이는 게 부담스러워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반기업 정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그룹의 최근 특검발(發) 뉴스에 대한 대응도 달라진 모습이다. 수사 중인 사안에 일일이 반박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낮은 자세’를 유지해 오던 기조에서 벗어나 사안마다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고 있다. 특검 수사가 ‘증거에 의한 법적 책임’보다 ‘언론 보도에 따른 여론 재판’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청탁이 있었다’ ‘처분해야 할 주식 수를 줄여 달라고 공정위에 로비를 했다’ ‘바이오 상장에 특혜가 있었다’ 등의 보도는 수사 결과로 입증됐다기보다는 특검의 수사 방향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황이 기정사실처럼 보도되면서 그룹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게 삼성의 생각이다.

삼성의 대응 변화는 최근 입장 자료의 배포 횟수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은 지난 9일 삼성물산·제일모직 순환출자 관련 보도에 대한 입장, 10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특혜 의혹에 대한 입장, 12일에는 최씨 일가 명마 지원 및 중간금융지주회사법 추진 로비 의혹에 대한 설명 자료를 출입기자들에게 잇따라 발송했다. 이 부회장이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던 13일 오후 9시에는 명마 ‘블라디미르’ 지원 의혹과 관련해 “2016년 9월 29일에 체결되었다는 매매계약서와 이면계약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삼성은 해당 계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관여한 바 없다”고 감정 섞인 어조로 반박했다.

재계에서는 대통령 대면조사를 못한 상태에서 성과에 압박을 받는 특검이 ‘삼성 단죄’에 사활을 건 것으로 풀이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입장에서는 보도되는 내용 하나하나가 브랜드 이미지 실추는 물론 경영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어서 대응 방식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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