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걸 잃고도 우린 어떻게 계속 살아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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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형제로 출연한 카일 챈들러(왼쪽)와 케이시 애플렉. [사진 아이아스플러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형제로 출연한 카일 챈들러(왼쪽)와 케이시 애플렉. [사진 아이아스플러스]

올 해 단 한편의 영화를 봐야 한다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월 15일 개봉)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아직 2월이라 섣부른 감이 있지만 그만큼 이 영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상실의 풍경을 그린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자책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소중한 것을 잃고도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절망뿐인 삶도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오늘 개봉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살아남은 자의 쓰라린 고통과 자책
함부로 추측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

영화는 미국 보스톤에 살고 있는 잡역부 리(케이시 애플랙)의 고단한 삶을 응시하며 시작된다. 온갖 궂은 일을 자처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리에게 형(카일 챈들러)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는 수년만에 고향인 맨체스터로 향한다. 하지만 형은 죽고, 대신 형의 10대 아들인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이 되어달라는 유서를 받아든다. 순간 리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고향을 떠나게 한 ‘그 사건’을 떠올린다. 자신의 실수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그 사건’ 말이다. 형의 죽음은 그의 상처를 헤집는다.

근래 나온 상실에 관한 영화와 비교하자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잔잔한 바다처럼 고요하다. ‘재키’(1월 25일 개봉, 파블로 라라인 감독)가 재클린 케네디(나탈리 포트먼)를 극도로 클로즈업해 그의 표정 안에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 불러온 충격과 좌절의 서사를 써내려갔다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한 걸음 떨어져서 괴로움에 짓눌린 한 인간을 지켜본다. 리는 눈 쌓인 바닷가 마을을 구부정한 몸으로 걷고 또 걷는다. 몸은 살아있지만 마음은 죽어버린,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는 절망의 몸동작을 영화는 어떤 수사없이 그려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 영화는 누군가의 슬픔을 함부로 추측하거나 가늠하지 않겠다는 사려깊은 태도를 취한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이 영화가 “절망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조카 패트릭의 존재가 그걸 증명한다. 패트릭은 아버지가 죽었지만 슬픔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고, 밴드에서 노래도 하고 싶은 청춘의 싱그러움이 온몸에서 피어나온다. 리와 패트릭의 관계는 우리 주변에 늘 죽음이 맴돌고 있지만, 생의 찬란함 또한 바로 그 곁에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렇게 불쌍한 남자를 지극한 연민으로 끌어안는다. 결국 남겨진 자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한계를 긍정한다. 이대로 생을 끝내기엔 맨체스터의 바다가 눈부시게 푸르고 아름답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잘 보이지 않는 작품이다. 모든 배우가 실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극의 일부로 자연스레 녹아든 덕분이다. 작은 동작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조율해낸 로너건 감독의 공이 크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케이시 애플렉도 절망에 짓눌린 남자로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사한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에도 후보로 올라 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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