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준비 많이 했드만” “안희정, 노무현 똑 닮아 부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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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이가 노무현이 똑 닮아 부렀어.”(광주 서구 화정동 한모씨·76)

중앙일보, 광주 시민 50명 만나보니
“친노는 안 찍응게 안철수 할라요”
“이재명 좋은데 현실적으로 힘들어”
“좀 더 지켜볼란다” 신중론도 상당

“아니 성님, 문재인이가 준비 많이 했드만.”(서구 화정동 김성찬씨·70)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13일 오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을 방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와 이야기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자 등록을 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13일 오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을 방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와 이야기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자 등록을 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지난 11일 오후 7시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의 한 포장마차에서 70대 노인 간에 토론이 벌어졌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몸을 덥히러 온 이들이었다. 포장마차 주인 김모(55)씨가 “어르신, 이번에 정권 교체를 하려면 문재인씨가 돼야 한다니까요”라며 김씨 말에 맞장구쳤다.

광주는 지난해 4월 총선 때 반문재인 정서가 강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여론 지지율이 1위를 달리면서 반문정서는 희석되고 이달 초까지만 해도 “정권 교체를 위해선 문재인을 밀어줘야 한다”는 기류가 우세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3일간 광주 현지에서 시민 50명을 만난 결과 문 전 대표의 우세 속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상승세가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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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후보는 문 전 대표였다. 문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들에게선 ‘정권 교체’ ‘대세’ ‘안정감’ ‘준비된’ 같은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오랜 여론조사 1위로 인한 대세론이 정권 교체 심리와 결합해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문 전 대표가 경험도 있고 제일 믿을 만하다. 사람을 먼저 위하고 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후보”(회사원 이수연씨·34)라는 적극적 지지자도 있었지만 소극적 지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충장로 근처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원태(46)씨는 “김영란법 때문에 꽉 쫘매니깐 장사가 안 돼 죽겠다”며 “바빠서 그렇게 생각을 깊이 안 해 봤는데 여론조사 보니까 문재인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디?”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만난 조모(44)씨도 “썩 좋아서 그라는 건 아니고, 이번에 정권은 바꿔야 하니까”라며 문 전 대표 지지의사를 밝혔다. 양동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차숙자(48)씨는 “문재인 아니겠습니까? 안희정에 대해 긍정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냥 인지도가 높아진 거지 뭐…”라고 했다.

하지만 반문정서는 남아 있었다. 광주송정역에서 만난 자영업자 안경호(54)씨는 “문재인이 광주를 위해 뭘 했당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확 밀 때는 밀어붙여야 하는데 여론 보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니 영 별로”(김판수씨·48)라는 말도 나왔다. 이런 이들이 대안으로 안 지사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표현 중 ‘젊음’ ‘강단’ ‘참신’ ‘야무지다’ ‘안티가 적다’와 같은 지지 이유가 나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오른쪽)가 지난 12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하고 있다. 13일 안 지사는 관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방역대책을 보고받고 조치를 취하는 등 밀린 도정에 집중했다. [뉴시스]

안희정 충남도지사(오른쪽)가 지난 12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하고 있다. 13일 안 지사는 관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방역대책을 보고받고 조치를 취하는 등 밀린 도정에 집중했다. [뉴시스]

안희현(40)씨는 “이제 젊은 사람이 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반문했고, 권영운(39)씨도 “안희정이 신선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메시지’보다는 ‘이미지’에 더 끌리는 중이라 안 지사에 대한 지지 표현은 호감도나 선호도에 가까웠다. “지지율이 더 올라오면 안희정을 찍겠다”(강정명씨·39)거나 “안희정이 문재인을 이겨 불고 단일후보로 나오믄 안희정을 찍어야제”(김한수씨·66)라는 식으로 전제가 붙기도 했다.

‘친노’라는 정치진영에 반감을 드러내는 시민도 있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박홍균(49)씨는 “문재인이나 안희정이나 다 형·동생 아니오. 나는 친노는 안 찍응게 안철수 할라요”라고 말했다. 광주 금남로에서 만난 김모(73)씨도 “정책이 좋고 참신하고 똑똑항게 결국은 안철수 뽑아야제”라고 했다. 양동시장 상인 안경아(41)씨는 “솔직히 이재명이 됐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문재인을 못 이길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속내를 밝히지 않은 이들(50명 중 8명)이 적지 않았다. 주부 김영선(58·여)씨는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자꾸 그런 식으로 누구 지지하느냐고 묻는 건 물을 흐리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략적 투표’라는 말을 직접 언급한 시민도 있었다.

금남로 부근에서 만난 정모(59)씨는 “우리가 그렇게 쉽게 결정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여. 우리는 마지막까지 고민해 보고 전략적으로 투표할랑게 묻지 마시오”라고 했다.

광주=채윤경·안효성 기자 pchae@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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