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관이 재단 출연금 낼 9곳 불러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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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중앙지법에서 13일 열린 최순실(61)씨와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재판에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의 관계자들이 청와대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증인으로 나온 청와대 관계자도 당시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전경련 실무자, 최순실 재판서 진술
“안종범, 재단 건물 후보지 4곳 지목
김상률 차 타고 답사” 비서관 증언도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전경련 사회공헌팀장 이모(41)씨는 “2015년 10월 청와대에서 한·중 MOU 행사와 관련된 회의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최상목 전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1차관)이 재단 설립 이야기를 했다. 최 전 비서관이 ‘일주일 안에 300억원 규모의 재단을 만들 거다’며 출연금을 낼 9개 기업을 불러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씨는 또 언론 등에서 재단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가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참고인 조사 당시 왜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냐”고 묻자 “상사인 이용우 본부장이 청와대로부터 ‘전경련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단 설립을 한 것으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해 사실을 숨겼다”고 답했다.

오후에 증인으로 나온 박찬호(60) 전경련 전무도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대기업에 출연금을 요구한 정황을 털어놨다. 박 전무는 “2015년 10월 삼성·현대차·SK·LG의 전무들과 조찬 모임을 가졌다. 당시 전무들은 ‘청와대의 말이면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였다”며 “ 대통령이 기업 회장들과 직접 만나 말씀하셨고 경제수석실에서 지시한 점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이수영(40)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실 행정관은 “안 전 수석으로부터 재단 건물 후보지 네 곳을 받아 당시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관용차를 타고 직접 돌아봤다”며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이 민간재단의 사무실 후보지까지 답사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국정 농단 의혹을 폭로한 고영태(41)씨와 그 측근들의 통화 녹음파일을 두고 검찰과 최씨 측 변호인이 설전을 벌였다. 최씨 측은 “고씨의 지인이었던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가 자동 녹음한 통화파일 2300여 건을 복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녹음파일 엔 고씨가 “내가 (K스포츠)재단에 부사무총장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우리가 다 장악하는 거다”고 말한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에 검찰 측은 “사건과 관련된 29개 파일의 녹취록은 이미 법정에 제출돼 있다”고 반대했다. 재판부는 “필요하면 변호인 측이 김씨를 증인으로 신청하라”고 말했다.

김선미·김나한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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