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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맞힐 소 3800마리인데 공공수의사는 둘뿐이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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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슈추적 구제역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한 젖소 농가. 30년 경력의 연천군 공공수의사(공수의) 최광주(58)씨가 방역복과 방역 모자·장갑·신발을 갖춘 후 병에 담긴 백신과 접종 도구를 들고 울타리를 넘어 들어갔다. 주사를 놓으려 하자 젖소 5마리가 좁은 축사 내에서 무리 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긴 막대 모양의 주사기를 들고 소들을 따라 돌던 수의사는 능숙한 솜씨로 젖소의 뒷다리 허벅지 상단 부위에 주사를 놓았다. 그는 “주사를 맞지 않으려 날뛰는 소에게 백신 주사를 정확히 놓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연천군에 50마리 미만의 소·젖소를 키우는 농가가 226 곳(3804 마리 사육)인데 나를 포함, 2명의 공수의가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천 등 대부분 지자체 인력 부족
농장주가 직접 하는 곳도 부실 접종
“정부가 일괄적으로 방역 지휘를”
보은 2곳, 구제역 추가 의심 신고

구제역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데는 백신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높다. 접종을 담당하는 공수의가 부족해 발 빠른 대응이 힘들고 비전문가인 농장주에 대한 백신접종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소규모(소·젖소 50마리 미만 사육) 농가는 공수의가 무료로 놔준다. 50마리 이상은 원칙적으로 농장주가 자비로 놓는다.

구제역이 확산되는 가운데 백신 주사를 놓을 공공수의사가 부족해 축산 농민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원칙적으로 농장주가 백신접종을 하도록 돼 있는 50마리 이상 사육 농가들도 공수의가 접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일 부산시 기장군 소속 공수의 가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구제역이 확산되는 가운데 백신 주사를 놓을 공공수의사가 부족해 축산 농민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원칙적으로 농장주가 백신접종을 하도록 돼 있는 50마리 이상 사육 농가들도 공수의가 접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일 부산시 기장군 소속 공수의 가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경기도 안성시의 경우 공수의 5명이 920곳 농가(1만5800 마리)의 소·젖소에게 백신 접종을 담당하고 있다. 공수의 한 명당 496마리다. 류명곤(55) 공수의는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하루에 150~200마리를 몰아치기 식으로 접종했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엔 69곳 농가는 한우와 젖소 996마리, 6곳 농가에서 돼지 3000여 마리를 키운다. 하지만 군 지정 공수의가 한 명뿐이어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공중방역수의사 1명, 부산시보건환경연구원 산하 동물위생시험소의 수의사 1명 등 3명을 동원해 최근 백신접종을 마쳤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844명의 공수의가 위촉돼 50마리 미만의 소·젖소를 키우는 8만3144곳 농가(총 110만 마리)의 백신접종을 맡고 있다. 1인당 1300마리 꼴이다.

백신을 직접 놓는 50마리 이상 대규모 사육농가에 대한 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철(51) 연천군 낙농연구회 회장은 “6개월에 한 번씩 젖소 70여 마리에 직접 백신 주사를 놔준다”며 “주사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주먹구구 식으로 놓다보니 솔직히 항체가 제대로 형성됐는지도 스스로 의문이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의 젖소 농가 주인 최모(65)씨는 “내가 직접 백신을 접종한 뒤 안심하고 있었는데 구제역 발생 이후 항체 형성률 검사 결과 19%가 나와 충격을 받았다”며 “백신접종은 공수의 등 전문가가 맡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선 소 50마리 이상 사육농가에 대해서도 지자체가 예방 접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를 정부 차원으로 확대하기엔 예산 확보와 인력 수급 문제 등으로 어렵다”고 했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방역 체계만큼은 재정과 전문성이 제각각인 지자체에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단일 잣대로 일괄적으로 지휘·통제해야 한다”며 “각 지역의 공수의를 확대하고 50마리 이상 사육 농가도 전문가들이 백신접종을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보은군에서 구제역 발생이 의심되는 농장 2곳이 추가로 나왔다. 농식품부는 예찰 중인 보은 2개 한우 농가에서 구제역 증상을 보인 소가 발견됐다고 13일 밝혔다. 전국 구제역 발생 8개 농가(의심신고 포함) 가운데 6개가 보은에 몰려 있다.

연천·안성·보은·완주=전익진·임명수·최종권,김준희 기자 ijjeo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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