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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절친의 청혼 거절한 재클린 미공개 편지 19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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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60년 대선 후보인 남편 케네디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쓰고 있는 재클린.

1960년 대선 후보인 남편 케네디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쓰고 있는 재클린.

재클린이 옴스비 고어에게 쓴 자필 편지. [뉴욕타임스]

재클린이 옴스비 고어에게 쓴 자필 편지. [뉴욕타임스]

“우리는 많은 걸 서로 나누고 함께 잃기도 했죠. 비록 당신이 바란 식은 아니라 해도 (우리 사이의) 사랑과 고통의 연대는 끊어지지 않을 거예요.”(1968년 11월 13일)

두 사람, 남편·부인 사별 후 여행
재클린, 선박왕과 재혼 뒤에도
“당신은 오빠 같은 존재” 편지 써

근 50년간 잠자고 있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1929~94)의 ‘은밀한 편지’들이 봉인 해제됐다. 편지 수신인은 재클린의 첫 남편인 존 F 케네디(1917~63) 전 미국 대통령의 ‘절친’이자 주미 영국대사를 지낸 데이비드 옴스비 고어(1918~85).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영국 웨일스의 옴스비 고어 일가 소유 저택에서 발견된 편지들이 다음달 런던 경매에 부쳐진다고 10일 소개했다.

옴스비 고어는 케네디 대통령과 한 살 차이로 둘은 오랜 친구 사이였다. 63년 케네디 암살 뒤 재클린과 옴스비 고어가 핑크빛 관계였다는 관측은 이전에도 있었다. 두 사람은 67년 11월 캄보디아 유적지인 앙코르와트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옴스비 고어가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사별한 직후였다.

데이비드 옴스비 고어 [뉴역타임스 캡쳐]

데이비드 옴스비 고어 [뉴역타임스 캡쳐]

이번에 공개된 편지에 따르면 옴스비 고어는 그 몇 달 뒤 재클린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했다. 재클린은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를 선택했다고 알렸다. 재클린이 자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그 어떤 위로와 위안을 찾을 길은 나의 과거와 고통과 무관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오나시스에 대해 “나를 고독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사람이다. 현명하고 친절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재혼 후에도 옴스비 고어를 향한 편지는 계속됐다. “당신은 내 친애하는 오빠 같은 존재이자 멘토. 잭(존 F 케네디)에게 그랬듯 내게 유일하게 진정한 영혼”이라고도 썼다.

60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해럴드 맥밀런 당시 영국 총리는 옴스비 고어를 주미 대사로 임명해 워싱턴으로 보냈다. 케네디는 옴스비 고어를 대단히 신뢰해 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등 주요 현안을 그와 상의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편지 묶음 중에는 케네디가 그에게 감사와 신뢰를 전한 서한도 들어 있다. 케네디 암살 다음날 옴스비 고어가 백악관을 들어간 허가증도 발견됐다. 아끼는 사람을 서로 잃은 옴스비 고어와 재클린이 절절한 고통을 함께 나누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재클린이 고어에게 쓴 자필 편지. 내달 경매에 부쳐진다. [뉴욕타임스 캡쳐]

재클린이 고어에게 쓴 자필 편지. 내달 경매에 부쳐진다. [뉴욕타임스 캡쳐]

빨간 가죽 상자에 밀봉된 채 발견된 재클린의 편지는 19통. 청혼을 거절당한 뒤 옴스비 고어가 재클린에게 쓴 편지 초본도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묶음 중에는 옴스비 고어가 재클린에게 쓴 편지 초본도 있다. [뉴욕타임스 캡쳐]

이번에 발견된 편지묶음 중에는 옴스비 고어가 재클린에게 쓴 편지 초본도 있다. [뉴욕타임스 캡쳐]

“이번 여름 비밀 결혼을 하면 어떨지도 계획했는데, 이 모든 게 뉴욕에 내린 지 몇 시간 만에 허사가 됐소.” “당신 사진을 볼 때마다 흐느껴 운다오. 어쩌다 이런 고뇌에… 도대체 왜….” 이 편지가 실제로 보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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