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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너도나도 불공정 고발, 누가 책임질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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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단순히 경제 문제만이 아니었다. 위기를 자초한 사람은 1%의 가진 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망하지 않았다. 손해를 본 사람은 99%의 덜 가진 자였다. 1%를 위한 공적자금은 99%의 세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부당함과 불평등은 사회의 분절로 이어졌다.

한국은 양상이 달랐다. 이런 분절이 대기업(1%)과 중소기업(99%)의 갈등으로 변했다. 당시 정부가 동반성장을 추진한 배경이다. 동반성장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민주화로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선거용에 그쳤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공정거래다.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의 주요 수단이다.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없이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제도다. 그러나 공정위의 한계가 있었다. 불공정 거래는 경제편익을 분석해 시시비비를 가린다. 더디게 진행됐고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웠다. 수요자의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3년 전 여야 합의로 의무고발제도를 도입했다. 검찰,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선을 앞두고 진보 성향의 정당이나 대선 주자들이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를 주장했다. 이를 폐지하면 누구나 공정거래 위반을 고소·고발을 할 수 있고 공정위는 물론 검찰과 경찰도 관련 수사를 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대기업의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는 득보다 실이 더 많다. 언뜻 보기에 공정위, 검찰, 경찰 모두 공정거래 사건을 처리하니 불공정 행위가 금방이라도 근절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견·중소기업의 고소·고발 증가로 시장 혼란이 더 우려된다. 최근 3년간 공정위에 신고를 당한 피신고인 중 중견·중소기업의 수는 6824개로 전체 신고의 84%를 차지한다. 제조업의 경우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이 중소기업과 납품거래를 한다. 전속고발제가 전면 폐지되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를 상대로 고소·고발이 증가할 수 있다. 가령, 경력 20년을 내세운 세탁소 광고가 불공정하다고 검찰과 경찰에 고발할 수 있다. 또 공정위와 검찰, 경찰이 동일사건을 중복으로 수사해 행정력 낭비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가 제기된 이유를 정부기관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중소기업에 여전히 정부기관의 문턱은 높고, 시장의 불공정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의 입장이나 처지를 잘 알고 대변할 수 있는 공신력을 갖춘 민간기관에 고발 요청권을 줌으로써 높은 문턱을 낮추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은 한국경제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늘 주목을 받는다. 그렇다고 경제 문제를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할 수 없다.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현장의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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