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대 중사 출신에게 배운 트레킹 노하우 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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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1박2일로 백두대간 태백 화방재(1330m)에서 삼수령(920m)까지 걸었다. 강원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총 640km의 백두대간을 29구간으로 나눌 때 열 번째 코스, 약 20km다. 화방재에 진입하기 전, 태백산 정상을 왕복했으니 총 거리는 약 30km다. 트레킹 동료로 미 해병대에서 8년간 근무한 브래드 프리앙(27)이 함께했다.

그는 오는 3월 백두대간 논스톱 종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후 미국의 대표적인 트레일이라 할 수 있는 아팔라치아트레일 종주와 퍼시픽크레스트트레일 종주까지 할 계획이다. 브래드는 지난 2008년 미 해병대에 입대해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 등 접전지역에서 근무하고 2016년 전역했다. 군 복무 때는 40kg 이상의 군장과 장비를 착용하고 1시간 평균 5km의 속도로 이동한 강건이었다. 또 미국의 다양한 트레일을 경험한 노련한 트레커다. 때문에 보고 배울 점이 많았다. 브리앙의 트레킹 노하우 몇 가지를 공유한다.

1. 20kg 장비를 10kg으로 줄이는 방법

백패킹 동호회인들의 '박배낭'은 무게가 보통 20kg에 육박한다. '박배낭'은 1박 이상의 야영 장비를 담은 배낭이다. 기자도 그랬다. 텐트(1인용 1.5kg), 침낭(1.5kg), 매트리스 등 야영 장비를 비롯해 여분의 의류와 장갑·양말 등 보온의류, 1박2일치 1인분 식량, 카메라 등을 챙기니 20kg이 훌쩍 넘었다. 반면 브리앙의 짐은 기자의 딱 절반 무게였다. 가장 무거운 텐트와 침낭 무게가 기자의 절반 내지 3분의1에 불과했다. 그의 미국산 엠엠씨 기어(MMC GEAR) 1인용 텐트는 609g, 인라이텐디드 이퀴프먼트(Enlightened Equipment) 침낭은 652g이다. 그러나 침낭의 내한 온도는 영하 12℃로 국내 겨울 시즌에 충분하다. 백팩은 하이퍼라이트 마운틴기어(Hyperlite Mountain) 55ℓ짜리로 무게는 953g이다. 텐트와 침낭은 미국에 있는 그의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아웃도어 장비 회사 제품이다. 여분의 보온의류와 식량 등을 넣었을 때 총 무게는 약 10kg. 하지만 기자의 배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알찬 장비들이 들어 있었다. 장비가 가벼우니 발걸음이 경쾌할 수밖에 없다. 20kg 이상의 '박배낭'을 짊어지고 헉헉대는 국내 트레커와는 상반된다.

2. 패킹 인 패킹

패킹(Packing)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55ℓ 배낭 안에 작은 수납 가방을 차곡차곡 쌓은 것이다. 물론 이는 백패커의 기본이다. 브래드의 패킹이 눈에 띄는 점은 작은 수납 가방 중 절대로 비에 젖어선 안 되는 물품에 방수 커버를 사용한 것이다. 바로 침낭·양말 등 보온의류 그리고 식량이다. 보통 '비가 오면 방수커버를 씌우면 되지'라며 배낭 안 물품은 비 단속을 하지 경우가 많다. 브래드는 방수 처리를 한 번 더 한 셈이다. 이는 비가 세차게 오면 방수 커버에도 불구하고 배낭 안으로 물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카메라와 구급약을 담은 별도의 백을 만들어 가슴 부위에 매단 것도 이채롭다. 사진 촬영과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가 용이하다. 단 "(작은 가방을 가슴 부위에 달면)경사면을 올라갈 때 발밑 상황이 잘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는 것은 유의하자.

3. 함께 걸을 때 앞사람과 가장 적당한 간격은

브리앙과 1박2일을 함께 걸으며 '존경스러울 만큼' 배우고 싶은 점이었다. 둘 이상 걷게 되면 뒤에서 걷는 사람은 앞사람을 마크(Mark)삼아 걷게 된다. 대개 뒷사람이 앞사람을 바짝 쫓는다. 뒤에서 걷는 이의 입김이 앞사람 뒷덜미에 전해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때 앞사람은 마음이 바빠지고, 반사적으로 뒷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하려 바삐 걷게 된다. 뒷사람은 다시 바짝 쫓는다. 트레킹이 아니라 서로 쫓고 쫓는 술래잡기가 된다.

국내 트레킹 경험이 없는 브리앙은 항상 기자를 뒤따랐다. 그는 자로 잰 듯 3~5m의 간격을 유지했다. 앞사람이 서면 그대로 멈춰서 기자를 주시했다. 정찰 나간 군대의 분대장을 뒤따르는 분대원처럼 움직였다. 그는 해병대 시절 시속 5km로 구보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트레킹 할 때는 시속 6km로 걸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날 시속 2km로 걸었다. 분명 마음속으로 앞질러 가거나 앞사람을 바짝 쫓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일정한 간격으로 유지했다.

4. 속도를 조절하라

"우린 45분 만에 3km를 하산했어, 아주 좋은 속도야" "우린 1시간에 2km를 넘기지 못한 것 같아" 브리앙은 항상 손목시계와 이정표에 나오는 구간을 체크하며 속도를 점검했다. 트레커는 자신이 걷는 속도에 민감해야 한다. 위험 요소가 많은 겨울 산을 걸을 때는 특히 그렇다.

5. 옷은 가볍게, 레이어는 간소하게

브리앙은 워킹할 때 긴팔 티셔츠 한 장만 입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곧바로 고어텍스 소재 점퍼를 걸쳤다. 또 10분 이상 휴식시간을 가질 땐 고어텍스 점퍼를 벗고 두꺼운 패딩 재킷을 껴입었다. 그는 여러 겹의 옷을 껴입은 한국 등산객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물론 산행 시 복장은 '얇은 옷을 여러 겹(Layer)으로 껴입으라'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꼭 몇 겹을 껴입으라는 뜻은 아니다. 날씨와 주변 환경, 자신의 체온 변화에 맞게 입는 게 중요하다. 또 레이어(Layer)는 간소할수록 좋다.

6. 끼니는 길에서 해결한다

브리앙은 사전에 "식량과 식사 담당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리고 미국식으로 간소한 점심과 아침을 내놓았다. 한국 스타일로 라면과 밥은 안 하니 국물이 남지 않아 잔반 처리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첫날 점심은 길에서 또띠아와 땅콩 잼을 먹었다. 둘째 날 아침은 1인분씩 포장된 용기에 끊인 물을 붓기만 하면 조리되는 미국산 오트밀을 내놓았다. 든든했다. 무엇보다 딱딱 긁어먹기만 하면 설거지가 필요 없다. 브리앙은 집 근처 후암동 식료품점과 부인이 근무하는 용산 미군기지에서 트레킹 간편식을 구입한다고 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또띠아와 땅콩 잼, 물만 부으면 되는 오트밀…. 다음 트레킹 때 꼭 실천해보고 싶은 메뉴다.

7. "트레일에 술을 반입하면 벌금 500달러야"

겨울 트레킹 명소인 태백산·함백산·금대봉을 걸으며 많은 등산객이 만났다. 더러 불콰해진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도 이들을 못 봤을 리 없다. 그는 1박2일 일정이 끝난 삼수령의 작은 점방에서 냉장고 가장 아래 칸에 진열된 막걸리를 보더니 "사람들이 배낭 옆에 꽂고 가는 게 저것이냐?" 물었다. 가슴 뜨끔한 질문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던졌다. "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떤 주는 트레일에 술을 반입하면 벌금이 500달러야." 물론 미국 국립공원 또는 주 공원에서 술이 반입되는 곳도 있다. 하지만 한국만큼 술을 좋아하지는 않는단다.

8. 깨알 같은 소품들

그는 오트밀에 뜨거운 물을 부어올 때 음식이 식지 않게 포일 포트(Foil Pot)에 음식을 담아 기자에게 건넸다. "이렇게 하면 음식을 먹는 동안 식지 않아"라며. 세심한 배려에 감동이 밀려왔다. 포일 포트는 두 겹의 포일에 쌓여 있는데, 중간에 일명 '뽁뽁이'라 부르는 단열재가 들어있다. 뽁뽁이와 포일 재질이니 가볍고, 패킹할 때는 둘둘 말아 접으면 된다. 미국에 배송 받은 것이라 했다. 이 밖에 두꺼운 양말을 직접 재단해 만든 물병 커버, 산에서 치약·칫솔을 쓰지 않기 위해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껌도 본받을만한 점이다. 물론 가장 탐나는 장비는 500g짜리 동계용 침낭이었다.

글·사진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 취재 후기=브래드와 1박2일 트레킹은 지난 2월 4~5일 이틀 동안 진행됐습니다.  야영 장소는 태백산국립공원 두문동재 들어서기 전 화장실 앞 공터였습니다. 바로 앞에 만항재-두문동재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매점이 있습니다.  매점 주인은 몇 주 전 군 특전사 요원이 같은 장소에서 야영을 했다고 일러줬습니다. 당시는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야영한 날은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손목시계에 표시된 두문동재(1268m)의 5일 아침 최저기온은 약 -5℃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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