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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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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7만원짜리 서바이벌 칼’(특수작전칼, 일명 람보칼) 때문에 6일 육군이 발칵 뒤집혔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캠프에 합류한 전인범(예비역 육군 중장·사진) 전 특전사령관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달 특전사에 갔는데 (후배들에게 들어보니)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칼을 (예산에 반영하지 않고)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문재인 캠프에 들어간 이유를 밝혔다.

전인범, 문재인 캠프에 합류 이유
“7만원 특수작전칼 예산 잘려 화나”
육군 “15만원짜리 칼 예산 편성” 반박
전 “특전사 장비 보급 문제 말한 것”
조준경·소음기 등 사비로 구입 상황

그는 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특전사령관 시절(2013~2015년) 도입을 제안했던 특수작전칼 예산이 (올해) 잘렸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듣고 쓴 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 ‘람보’를 보면 주인공의 칼은 야지(野地)에서 생존하는 데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 군의 대검은 총검술용으로 베고 찌르는 데만 쓰이는데 특전사 부대원이 유사시 적진에 침투할 때 어떤 칼이 더 필요하겠는가”고 되물었다. 그러곤 “철조망을 끊고 땅을 파서 비트(은신처)를 만들 수 있는 람보칼이 제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해명했다. 육군 관계자는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 전 사령관이 지난해 예산 편성 과정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 관계자는 “전 전 사령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잘 알겠지만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 있다”며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것에 대해서도 군 내부에 부정적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육군 관계자는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

전인범 “새 슬리퍼 예산 없어 못받기도”

전 전 사령관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특수전 병력에 특수전 장비를 제대로 보급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특전사 요원들의 주요 화기인 K1A 기관단총부터 특수전 임무에 맞지 않다. 반동이 작고 기능이 다양한 총기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현재 일부 특전요원은 K1A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광학식 조준경과 총구 불꽃을 가리는 소염기, 총소리를 줄이는 소음기 등을 사비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당초 특전사는 개인이 산 장비를 쓰는 것도 금지했으나, 이를 허용한 사람이 전 전 사령관”이라고 말했다.

전 전 사령관은 까다로운 군의 보급품 규정도 지적했다. 그는 “슬리퍼도 군 보급품이지만 새 슬리퍼 지급을 요청하면 예산이 없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사제(상용) 슬리퍼를 사 신게 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군은 무기체계 이외 전력지원물자(비무기체계)도 대부분 보급품으로 주고 있다. 군 관계자는 “사제가 더 좋은 게 있지만 군이 원하는 규격에 맞지 않은 경우가 있어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난해 5월 감사원은 침낭·배낭 등 전력지원물자 조달 과정을 감사했다. 그 결과 더 싸고 품질 좋은 사제(상용) 침낭이 있었지만 국방부가 30년이 넘은 구형 침낭을 더 비싼 가격에 수백억원어치를 사들인 사실을 적발했다. 그 배경에는 현직 군 간부와 퇴직 간부들 간의 유착 관계가 있었다. 퇴직 간부들은 군납업체의 로비스트로 활동했고, 그 피해는 장병들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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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당시 “장병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침낭보다 보온력이 우수한 침낭이 시중에 상용품으로 나와 있고 이럴 경우 규정상 상용품 구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관련 군 간부들은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금품을 받고 특정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군이 오랜 관행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달라진 규정에 맞춰 상용품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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