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만의 2%대 물가상승률, 추세적 저물가 탈출 신호탄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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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3개월 만의 2%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추세적인 저물가 탈출의 신호탄일까,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까. 2.0%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놓고 제기되는 궁금증이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12년 10월(2.1%)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매달 0%~1%대를 유지해왔다. 말 그대로 추세적인 저물가 국면이었다. 2%대의 물가상승률은 최근 들어 보기 힘들었던 ‘진객’인 셈이다. 흔히 장바구니 물가로 지칭되는 생활물가지수 상승률도 2.4%로, 2012년2월의 2.5% 이후 4년11개월 만의 최고치였다.

물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먼저 경제 성장의 신호탄이라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경제 성장으로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늘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물가가 상승한다. 정부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상성장률을 중요 지표로 간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물가가 오르면 당장 국민의 살림살이는 힘들어진다. 이전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지출을 늘려야 한다. 특히 최근 상황에서 물가 상승이 추세적으로 이어진다는 건 더욱 반갑지 않은 일이다. 경제성장이 지체된 상황에서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월의 고물가는 추세적인 저물가 탈출의 신호탄일까. 일단 그렇게 보는 시각이 많지는 않다. 기획재정부는 ‘유가 기저효과’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나 상승했다. 물론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절대 가격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지난해 1월의 유가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1월 석유류 가격은 -3.4%의 하락세를 보였다. 골이 워낙 깊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봉우리가 더 높아 보이는 이치다.

유가와 함께 소비자물가지수를 끌어올린 대표적인 품목은 계란과 채소류다.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의한 계란 품귀 현상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미치면서 1월 계란 가격은 61.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채소류 가격 폭등 현상은 올들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선채소가 17.8%, 신선과실이 9.6%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이들 품목을 주축으로 구성되는 신선식품지수도 12%나 상승했다. 당근(125.3%), 무(113.0%), 배추(78.8%) 등 개별 품목의 상승률도 기록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품목은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시 반영되는 가중치가 높지 않아 전체적인 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다. 실제 이런 일시적 요인들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모두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농산물·석유류 제외 물가지수가 1.5%, 식료품에너지 제외 물가지수가 1.7% 상승했는데 이들 지수는 지난해에도 1%대 초반에서 2% 사이에서 움직였다. 정부는 농축산물 가격도 채소류 재배면적 증가, 계란 수입물량 확대 등에 따라 점차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수영 기재부 물가정책과장은 “향후 소비자물가는 에너지 가격의 기저효과 축소에 따른 단기적 하향 조정 과정을 거친 뒤 1%대 후반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생활물가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가진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물가안정대책 추진상황을 물가관계차관회의를 통해 매주 점검하고, 강세를 보이는 농축산물 등의 설 이후 수급불안이 확대되지 않도록 집중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아직은 추세적인 저물가 탈출이라고 보긴 이르지만, 서민 생계와 직결되는 식료품과 공공요금의 가격이 오르면 가계소비가 더 얼어붙을 수도 있다”며 “정부가 정책 조절을 통해 관리가 가능한 공공요금만이라도 적극적인 인상 억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아직까지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장바구니 물가 급등은 생활비 증가→임금인상 요구 증가→투자 위축→고용 악화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며 “수입자유화 폭을 확대해 농축수산품의 수급 안정을 보다 근본적으로 도모하고 유통 현대화를 추진하는 등의 방법을 병행해 장바구니 물가 급등에 대한 특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박진석·이승호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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