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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선읽기

반기문이 충청에서 뜨지 않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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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충청 출신 대통령이 없었던 건 아니다. 4대 윤보선 대통령이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내각책임제 대통령이었던 그는 진정한 실권자가 아니었다. 5·16 군사정변으로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도 못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살던 서울 교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종로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요즘 말론 서울 사람이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인 보험 심리가 충청 표심
대망론 있지만 충청이란 이유만으론 몰표 없어

반쪽에 그친 윤보선 대통령과 강원 출신 최규하 대통령을 빼고 나면 우리 대통령은 죄다 영호남, 아니면 호남을 업은 부산 출신 대통령이다. 충청 의원 중에서 ‘반 전 총장이 공산당만 아니면 따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건 정치적 소수자인 충청인의 비애에서 출발한다. ‘언제까지 들러리로 곁불이나 쬐어야 하나’란 ‘핫바지’의 소외감이 뭉친 게 충청 대망론이다.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같은 쟁쟁한 대선후보들이 불을 지피고 이 언덕에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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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계산해낸 정치 공학도 출발점은 얼추 비슷하다. 그동안 우리 대선판은 뭐라 해도 영호남의 패권적 지역 싸움이었다. 그러니 영남이 기반인 범여권이 반 전 총장을 후보로 낸다면 충청과 영남의 지역연합 구도가 된다. 유권자 세 사람 중 한 명이 영남, 네 사람 중 한 명이 호남인 지역 분포에서 충청 몰표가 터지면 산술적으론 경기 끝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데서 반기문의 고민은 시작된다.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반 전 총장은 오히려 충청에서 고전 중이다. 지지세가 전체적으로 미지근한데 상대적으론 대구·경북(TK)의 성적이 좋다. 한 걸음 더 심층 조사하면 그의 지역 기반은 의외로 부산·경남(PK)과 가장 가깝다. 충청 기반의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제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정운찬 전 총리가 대선전에 가세했지만 아직은 충청 표를 나누는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반 전 총장은 수도권에서 강세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충청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충주고를 졸업한 반 전 총장은 무늬만의 충청인이 아니다. 충청 대망론 주자로 손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물론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놓고 보면 반기문의 충청만 표가 분산된 건 아니다. PK 출신 문재인 전 대표나 TK가 고향인 이재명 성남시장도 자신의 출신지에서 대표 주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달리 지역주의 투표 행태의 동력이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흐름엔 충청 유권자의 눈에 비친 반기문 대세론이 미풍(微風)인 이유가 크다. 역대 대선 결과를 놓고 보면 충청 표심은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인, 보험 심리 성향이 강하다. 대구와 광주처럼 단단한 눈덩이를 만든 뒤 점차 덩치를 불려 눈사람으로 키워가는 응집력은 약하다. 코끼리처럼 덩치를 불려놔야 고향에서 ‘우리 쪽 사람이래’ 하는 마음이 확산된다. ‘지더라도 우리 지역’이란 몰방 표심을 보여준 경우는 없다.

역대 선거에서 충청 표 결집의 대표 사례는 1987년 대선이다. 김종필 후보가 충남 1위로 45%를 끌어모았다. 그 숫자가 최대치다. 충북에선 13.5%였다. 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39만 표, 50만 표 뒤져 석패한 이회창 후보는 두 번 다 절반 이상의 표를 충청에서 잃었다. 총선도 마을마다 고을마다 생각이 다른 골고루 표심이다. 지난해 총선에선 여야가 14대 13으로 양분됐다. 그래서 충청은 ‘모든 선거의 균형추’로 불린다.

최근엔 천안, 아산, 당진 등의 지역에 대학과 공장이 잇따라 들어섰다. 외지인이 늘고 야성(野性)은 눈에 띄게 강화됐다. 수도권과 다를 게 없는 마음인데 반 전 총장은 ‘진보적 보수’와 ‘보수’를 오락가락하는 반반 어법이다.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하자는 게 그의 핵심 공약이다. 그러자면 기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질타하며 새 정치의 길을 열어 가는 게 논리적이다. 연합이니 연대니 하는 구태 정치 테크닉을 새 정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기존 정치권과 어울리며 정치 교체를 외치는데 그나마 혼선이 잦다. 그러니 충청에선 ‘음성 대표라면 몰라도 뭔 충청 대표?’란 사나운 눈초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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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에서 반풍을 태풍으로 만들려면 설 명절에 고향인 충북 음성을 찾는 과거 방식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사표라면 질색인 충청 민심에 좀 더 확실한 데이터를 내놔야 한다. 먼저 충청을 뛰어넘어 충청 밖에서 몸집을 불려야 한다. 아직은 유권자 절반이 부동층이다. 친박, 친문 패권 정치에 실망한 중도층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명분도 있고, 유권자 지형도 괜찮은 게 제3지대다. 그런데도 뜨지 않는 이유는 절실함과 진정성이 의심받아서다.

충청 출신이란 이유만으론 몰아주지 않는 게 충청의 선거다. 대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애국심과 정치를 바꾸겠다는 신념이 느껴져야 바라보는 마음도 움직이다. 민심이 움직이면 충청은 따라서 간다. 정권도 따라간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