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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박시백 화백 “조선시대 왕보다 대통령이 더 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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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이 대통령 보다 더 민주적이고 토론을 많이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500년 조선사를 스무 권의 만화책으로 옮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저자인 박시백(53) 화백은 최근의 ‘제왕적 대통령’ 논란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역사가 화두인 요즘 박 화백을 찾아가 기록의 의미, 지도자의 리더십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꾸만 현 시국으로 오버랩이 됐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 당쟁의 끝판을 보여주는 조선을 무대로 한 박 화백의 해박한 통찰을 즉문즉답으로 풀어 봤다.

-역사 선생님 책상에 항상 이 책이 놓여 있었다. 경제학과(고려대) 졸업자가 조선사를 그린 이유는 뭔가?
“시사만화란 게 독자들의 피드백이 바로바로 오니까 사실 계속 하기가 좀 힘들었다. 좀 호흡이 긴 만화를 하고 싶던 차에 사극을 보다 조선사에 흥미를 느끼고 시작하게 됐다. 조선 정치사를 그린 만화라면 그 시대의 시사만화를 이어 놓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시사만화 훈련이 밑천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선의 위인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인물은?
“역시나 세종과 이순신. 두 인물이 광화문에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조선이 낳은 인물이 아니라 하늘이 조선에 내려 준, 은혜를 베푼 인물이 아닌가 싶다. 세종은 나라를 설계 및 구상하는 것부터 신하와 더불어 하나의 정책을 펴는 과정까지 오늘날 대통령보다 더 민주적이고 더 철저히 토론에 의하였다. 어마어마하게 창의적이고. 세종대왕 하면 한글만 생각하고 다른 건 장영실, 집현전이 했겠거니 생각하는데 실은 거의 대부분 업적을 세종이 아이디어를 내고 진행과정을 일일이 체크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한 장수로서 천재성도 빼어나지만 자기희생적인 애국심 또한 높은 경지를 이뤘다. 이순신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는 없어지거나 일찌감치 남과 북으로 분단됐을 것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권에 묘사된 이순신. [사진=휴머니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권에 묘사된 이순신. [사진=휴머니스트]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사람은?
“그것 또한 세종이 아닐까 싶다. 워낙 재위 기간이 길고 일을 많이 해 세종실록이 굉장히 두껍다. 업적도 전문 영역이 많아서 과학기술 분야는 실록을 읽어도 잘 모르겠더라. 공부하는 데 힘들었다.”(웃음)

-지금 우리나라 모습이 조선 후기와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나.
“조선 초기와 후기를 조금씩 닮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근래에 보니 후기 쪽이 더 많이 비슷한 듯하다. 조선 초기는 고려시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틀을 구축해야 하니까 사회발전이 빨랐는데 후기로 넘어가면서 신분제가 고착되고 역동성이 사라져 갔다. 예전엔 다이내믹 코리아란 구호가 자연스레 느껴졌지만 어느 새부터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나오고 신분 상호간의 진입이 힘들어져 정치경제 특권이 고착화되는 조선 후기, 말기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개혁을 꿈꾸는 정치인에게 참고가 될 만한 조선의 리더는?
“정도전은 혁명을 꿈꾼 이로 엄밀히 말하면 고려인이다. 조선의 개혁가를 꼽자면 대원군이 아닐까 한다. 삼정의 문란과 세도정치의 적폐가 극에 달했을 때 이를 일거에 근본적으로 해결한 사람이다. 시대를 잘못 만나 그렇지 50년, 100년을 앞선 개혁정치인이다. 영·정조 때도 근본적 개혁이 아니고 균역법 정도 말고는 없다. 물론 대원군 때가 적폐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개혁하지 않으면 안 돼서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힘 있게 밀고 나가지 않았으면 적폐가 더 굳어졌을 것이다. 이쪽저쪽 눈치 보지 않은 대원군의 전격성과 과감성을 높이 산다.”

*삼정(三政): 전세(토지에 부과하는 세금), 군포(군역의 대가로 내는 포목), 환곡(곡식 대여 제도)을 일컫는 말.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관리의 과도한 수탈로 민란의 주요 원인이 됨.

-조선의 성군 하면 세종, 정조를 많이 얘기한다. 다른 왕은 없나.
“태종을 꼽고 싶다. 세종과 태종 둘 다 토론을 좋아한다. 세종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어 내거나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람에겐 숙지시킨다. 태종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토론 장치를 활용한다. 다분히 마키아벨리적이다. 그는 머릿속으로 먼저 생각해서 사건을 일으키고 결국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얻어낸다. 조선 건국 당시 사대부 세력들의 비전을 공유했던 이로 정도전과 생각이 다르지 않다. 흔히 왕권주의자, 신권주의자로 대립시키곤 하는데 그건 존재론적 위치로 당연한 거고 그들이 만들려는 사회는 비슷했다. 정도전이 꿈꾼 사회의 80%는 태종이 실현했다. 그 토대 위에서 세종이 맘대로 기량을 펼친 것이다. 지금도 ‘강력함’ 어쩌면 필요하겠다. 1~2년 적폐가 아니라 해방 후 지금까지 갖가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면 그런 과단성이 필요하지 않겠나.”

*마키아벨리(1469~1527): 『군주론』을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 ‘나라를 위해 군주는 때로 배신도 하고 잔인해져야 하며 인간성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로 요약될 정도로 강인한 군주론을 폈다. 이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 논리인지를 놓고 논란도 있다.

-조선시대 왕권과 대통령을 비교할 수 있을까.
“요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나는 정말로 대통령이 더 센 것 같다. 대통령보다 더 셌던 임금은 태종, 세조, 연산, 숙종, 영조 말년 정도로 몇 안 된다. 실제 유교정치 원리에 입각하면 할수록 왕에 대한 견제장치가 훨씬 더 촘촘하다. 지금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면 ‘아니다’고 제동을 걸 사람이 한둘밖에 안 된다. 조선은 대간(언론 담당)이 반대하고 안 들어 주면 6조 판서가 나서고 또 무시하면 마지막 정승들까지 반대한다. 그러면 진행이 안 돼 왕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공론이라는 게 잘 받아들여졌고 신하들도 ‘아니되옵니다’를 자기 사명으로 숙지하고 있었다.”

-그럼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가 있다고 보나.
“권력이 집중돼 있기도 하지만 대통령 주변의 마인드도 문제이다. 노무현 정부 때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을 보면 (대북정책과 관련) 대통령에게 끝없이 태클을 걸지 않았나. 지금 그런 일이 없는 거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의 의미가 뭘까.
“조선은 기록의 나라라 할 정도로 기록이 많았다. 사관들만 기록하는 게 아니고 승정원, 지방 감사들 다 기록했다. 전장의 장수들이 올리는 장계는 자기 공을 뻥튀기하느라 엉망이었지만 중앙의 왕이 있는 자리에서 기록은 엄정했다. 물론 사관도 사람이라 주관이 개입되고 특정 세력에 치우친 해설이 많았다. 그래도 팩트는 팩트대로 기록한다. 우두머리 격의 사람이 왕 앞에서 하는 이야기, 상소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적는다. 그 뒤에 ‘말이 안 된다’ ‘말은 번드레한데 속은 시커멓다’ 등 갖은 험담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팩트 자체는 충실하고 풍부하게 기록해 놓아 후대에 그런 의견은 배제하고 팩트를 취할 수 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적 가치는 굉장하다. 현대 신문사들의 기록의 차이도 당파성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대 팩트만 제대로 기록돼 있으면 가치관이 달라도 이후에 돌아볼 때 제대로 진실에 접근되지 않겠나. 기자가 ‘소설 쓰냐’란 말이 있는데 요즘 진짜로 소설을 쓰더라.”(웃음)

-정사만 다루지 말고 야사도 넣어달라는 요구가 많았을 텐데.
“정사도 좀 더 에피소드 위주로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글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사실 어른들도 역사를 잘 모르니까 내 책의 독자는 성인을 염두에 뒀다. 역사가들의 책도 알고 보면 실록을 제대로 안 보고 쓴 게 태반이고 대충 야사를 짜깁기했더라. 조선왕조실록을 먼저 전하는 게 임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정사 위주로, 상소문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역사학자들의 얘기와 다른 것도 있나. 캐릭터 해석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
“만화라고 무시해서인지 지적 안 하더라.(웃음) 인터넷에선 사도세자 죽음을 놓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종 때 정광필은 훌륭한 재상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재상의 덕목이란 첫째, 왕의 결정에 마지막 자문 역할을 해야 하고 둘째, 끝까지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는 기개가 있어야 한다. 정승의 최고봉인 황희는 빼어난 안목과 조정 능력을 갖췄지만 세종이란 후덕한 왕을 만나서이고 기개는 부족했다. 정광필은 둘을 다 갖췄다. 왕들에 대한 해석도 많이 다를 것이다. 특히 정조는 점수를 많이 깎았다. 훌륭한 자질이 있지만 그 시대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대원군은 청나라에 잡혀 갔다 돌아올 때 보면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교과서에선 경복궁 공사와 원납전 등으로 원성이 컸다고 배웠지만 그건 집권 초기 일이고 백성들의 대원군 지지는 확고했다. 민비 중심 권력을 무너뜨려야 하는 모든 세력,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전쟁, 심지어 일본군까지 누구도 대원군과 손잡으려 했다. 사실 쇄국이라는 것도 대원군이 저작권을 가진 파트가 아니다. 조선 왕조의 일관된 입장이다. 병인양요·신미양요를 거쳐 반개항과 쇄국 이미지가 굳어졌는데 세계정세에 대한 안목의 한계다. 당시 지식인이 글로벌한 안목을 갖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알았다 하더라도 그 깃발을 들기가 쉽지 않다. 사대부 중심 사회라 자기 권력을 허물기가 쉽지 않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했지만…."

박시백 화백의 작업노트. [사진제공=휴머니스트]

박시백 화백의 작업노트. [사진제공=휴머니스트]

-요즘은 역사 강연을 TV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문학이 가벼워졌다는 말도 들린다.
“일본과의 문제 등으로 인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대중적 인식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조선사를 그린 사람으로서 역사의 관심이 조선까지 와서 크게 덕을 봤다.(웃음) 앞날을 설계하려면 개인도, 나라도 자기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지 않겠나. 역사란 그 나라 국민의 기본적 소양이다. ‘역사를 왜 (굳이)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후손으로서 선조들 얘기를 아는 건 의무사항 아닐까. 명량해전의 주인공이 이순신인지 원균인지 몰라 버리면 너무 후손 된 도리가 아니지 않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길은 얼마나 어렵나. 만주에서 무장투쟁한 사람들 영하 수십 도에서 총 맞고, 배신당하고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수만 명이 죽었다. 굉장히 높은 비율이다. 이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 나라도 흔치 않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람이 민족의식을 찾고 기꺼이 목숨 바쳤다는 건 참으로 경이롭다. 그런데도 어릴 때 어른들은 ‘우리 힘으로 되찾은 게 아니라 미국이 되찾아 줬다’고 가르쳤다. 선조도 임진왜란 끝나고 ‘우리나라 장수가 한 게 하나도 없다’고 규정지었다. 명나라 군대의 힘이라며 공신 책봉을 십여 명만 했다. 조헌·곽재우 이런 분들 아니고 명나라 가서 지원군 요청한 사람, 자기랑 피난 같이 간 사람들만 공신이 됐다. 굉장히 교활하다. 전쟁 나자 도망만 다녀 체면이 안 서니까 자기가 망할 뻔한 나라를 명나라 도움을 요청해 되찾은 것처럼 부각시켰다. (독립운동보다 외세 도움을 강조하는 건) 친일파들이 은연중에 만든 논리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원폭 투하가 결정적 요인이라 해도 선조들의 일관된 독립운동 과정이 없었더라면 과연 독립국으로 인정받았겠나. 이런 거야말로 정말 자학사관이다.”

-세계가 구한말처럼 열강들의 각축전으로 가는 모습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이제 제법 강국인데 스스로 바보 같이 한다. 중소 분쟁 때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현재 우리가 북한보다 더 강한데 그런 역할을 못하지 않나. 일본하고 싸워도 둘이 같이 깨지는 거지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반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우수만화로도 선정됐는데.
“부끄럽다. 명단에 안 들어가도 부끄러운 거고. 지난 대선 때 친구 놈이 (문재인 캠프에서) 일하면서 이름만 넣어 달라고 해 그냥 멘토 명단에 들어갔다. 콘텐츠진흥원의 선정은 출판사가 나하고 상의 없이 한 거다. 혜택은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차기작(7권)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연구한 사람이 별로 없어 책임감을 느끼고 나름 자부심도 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을 근거로 하기에 해석권은 내게 있다. 역사는 사료를 기초로 한다 해도 어떤 사건을 취사선택하느냐에 따라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남들이 흘려버릴 일을 확대해 중요하게 얘기할 수도 있고. 일제강점기는 (실록과 같은) 기본 텍스트가 없다. 기초 사료보다는 연구자료를 위주로 가급적 해석을 배제하고 팩트로 확인된 것들을 정리할 생각이다.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들보다 좀 더 확대해 50명쯤 그릴 예정이다. 교과서에서 못 들어 본 이름이 제법 나올 것이다.”

-대선 즈음 출간되면 화제가 되겠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민감하지 않나.
“하하. 책은 연말쯤에 나올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잘한 건 잘했다고 할 텐데 사실 잘한 게 별로 없더라.(웃음) 시작부터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데 하와이 가서 순식간에 독립운동 조직을 접수해 자기 왕국으로 만들었다. 하여튼 유능하다. 열렬한 이승만 지지자들을 만들어 내고 못된 짓을 시켜도 척척들 해 내니 대단한 능력이다. 철저한 친미주의자다. 20~30년대 가만있다가 미국이 일본과 싸우는 순간 반일이 된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폄하할 건 아니지만 근저에 있는 게 애국심인지는 의문이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인터뷰=박주민(고양일고 1) TONG청소년기자 신대방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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