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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10. 잠입 (5)

중앙일보

입력

“병원이 미리 무너질 줄 알고, 사람들을 대피시킬 정도였지만 분명 여기 임상실험센터에도 나름대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너진 이후에 호들갑을 떨면서 우릴 불러들이고 나서는 가족들은 보여주지도 않고, 무슨 똥개처럼 각 층을 뒤지는 일만 시키고 있어요. 거기다 이 엉터리 무기들은 대체 뭡니까?”

“엉터리는 무신 엉터리여. 이래 봬도 설계도까정 그려놓고 만든겨.”

이무생이 버럭 성질을 냈다가 아들의 만류에 분을 삭였다.

김길수 역시 입고 있던 비닐 우의를 벗어서 둘둘 뭉치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전 결혼식 전날 밤에 제 약혼녀를 잃었습니다. 하늘이 다 무너지는 기분에 약혼녀를 따라서 죽고 싶었죠. 그런데 어느 날 형님이 병원에서 특이한 실험을 하는데 그 실험이 성공하면 그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안 믿었습니다. 무슨 마술사도 아니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냅니까? 그런데 형님이 어쨌든 손해 볼 건 없으니까 한 번만 믿어보자고 했습니다. 그 수술 동의선가 뭔가에 사인해주고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며칠 전에 안내장인가 초대장인가가 메일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할 일 없는 미친놈이 장난치는 줄 알고 잊어버렸다가 오늘 병원이 붕괴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어온 겁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오는 게 아니었는데, 절대 오는 게 아니었는데...”
결국 김길수도 오열하고 말았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들이라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 슬픔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김길수가 내뿜는 감정에 전염된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딱 멈춰버렸다. 내 아들은 분명 죽은 게 아니라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야! 이 새끼야! 지금 누구한테 떠넘기는 거야! 네가 먼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 주고 돈을 나눠 갖자고 했잖아! 그걸로 딴 년이랑 결혼한다고 깝죽댔으면서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은...”

앉아있던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 오희섭이 김길수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는 소리쳤다.

“그건 병원에서 제 동의서가 있어야 돈을 준다고 했으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다른 가족들 몰래 도장을 찍고 저를 설득한 거고 말입니다.”

“난 갑선이를 다시 살리고 싶었어. 그뿐이었다고, 정말 그뿐이었단 말이야.”

“그래서 다시 노리개로 삼기라도 할 생각이었습니까?”

“이 새끼가!”

오희섭이 김길수의 턱을 힘껏 후려쳤다. 한데 뒤엉킨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욕설과 주먹질을 나누는 내내 나는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몸에 떠밀린 하얀색 화분이 반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화분 안에 담겨있던 꽃과 흙들이 쫘르륵 쏟아지면서 대리석같이 매끈한 바닥 위를 굴러갔다. 씩씩대며 주먹질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박금자가 누가 좀 말려보라고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차재경과 사제, 두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그만들 하세요. 대체 이게 뭐하는 짓들입니까?”

사제의 서슬 퍼런 호통에 둘의 몸싸움은 끝이 났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사제를 쳐다보던 나는 순간 숨이 막혀왔다. 사제의 몸 여기저기에는 위층에서 죽은 원숭이의 몸에서 나온 것과 같은 형광색 피들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곁에 서 있는 차재경 역시 사제만큼이나 형광색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선, 선상님. 다치시진 않으셨습니까?”

눈이 휘둥그레진 이무생의 물음에는 대꾸하지도 않은 차재경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들 따라오세요. 보여드릴게 있으니까...”
누구의 대답도 듣지 않고 등을 돌린 차재경이 방금 빠져나왔던 어둠 속으로 도로 사라졌다. 사제까지 그의 뒤를 따르자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하나둘씩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나 역시 떨고 있는 김원섭을 부축해주면서 뒤쫓아 갔다. 차재경과 사제가 우리를 이끌고 간 곳은 south, 남쪽 통로였다. 앞장선 차재경이 오른쪽 구획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심한 악취가 풍겨져 나왔다.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린 사람들은 머뭇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갔고, 끄트머리에 있던 나는 그들이 흘러내는 나지막한 욕설과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오희섭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과 그들이 내리쬐는 빛들을 볼 수 있었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박금옥의 떨리는 목소리 뒤로는 최민우의 헛구역질 소리가 따라붙었다. 부처님을 찾는 박금봉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지고, 흔들렸다. 나는 문 옆에 서 있던 이대백에게 김원섭을 넘겨주고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신음소리를 냈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것은 사람 크기의 괴물이었다. 팔과 다리, 몸통과 얼굴은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손가락과 발가락도 두 개씩뿐이었다. 아랫배에 한가운데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나 있었고, 그곳에서 담배 연기 같은 나지막한 연기와 형광색 피들이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거나 악몽의 한 토막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발밑에 보여 지는 것은 분명 꿈이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은 아니었다. 이형주가 들고 있던 창끝으로 그 괴물의 팔뚝을 꾹 찔러보았다. 약간 들어가던 괴물의 살은 탄력이 없는지 금방 툭 터져버렸고, 아랫배처럼 형광색 피와 연기가 작은 구멍을 통해 흘러나왔다.

“에구머니나, 이게 대체 머여? 귀신이여? 아니면 사람이여. 잉? 말 좀 해봐.”

“아이, 누님 내가 이놈이 뭔지 어떻게 알아요. 왜 자꾸 나한테만 타박이에요. 타박은...”

박금옥이 찰싹대며 등짝을 때려대자 박금봉은 몸을 털면서 화를 냈지만 난 둘 다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존재를 발밑에 두고 혼돈과 함께 어지러울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어둠만큼이나 명확했다.

“이게 대체 뭡니까?”

윤삼식과 눈빛을 주고받은 김달호가 차재경에게 물었다. 나는 윤삼식이 허리띠 뒤쪽에 차고 있던 전기충격봉 위에 가볍게 손을 얹는 것을 보았다. 말을 건넨 김달호 역시 가죽 재킷의 지퍼 끝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피실험체, 보통은 그것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그것들? 피실험체. 좀 더 알아듣게 얘기하지 않으면 당신도 이 꼴로 만들어 버릴 거요. 다시 묻겠습니다. 이게 뭐요?”
김달호는 가죽 재킷 안에 손을 반쯤 집어넣고는 다시 물었다. 조폭 특유의 건들거림 대신 차가움과 의지만이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그와 윤삼식을 충분히 제압할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여차하면 사시미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는 김달호를 앞에 두고도 차재경의 감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차재경은 학생을 앞에 둔 교수처럼 천천히 위엄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발밑에 쓰러져있는 건 임상실험센터에서 실험 중인 실험에 이용되었던 피실험체, 관련자들이 통상 그것들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실험 중인 시약은 인간의 육체에서 나오는...”

차재경의 말은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겨버리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물론 통로 바깥에도 비슷한 어둠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숨을 차오르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밀폐된 방 안에서 생겨난 바람이 땀에 젖은 뺨과 목덜미를 어루만지자 사람들은 전기에라도 감전된 것처럼 펄쩍거렸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등을 맞대며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소리 없이 부는 바람의 손끝이 딱딱거리며 떨리는 내 턱을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어둠이 공간을 지배했고, 공간을 지배한 어둠은 서서히 우리들을 눌러버렸다. 엄마를 찾으며 덜덜 떠는 최민우의 엉엉거림이 귓가를 자극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이대백과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어둠 속으로 창을 겨누고 있었다. 뭘 두려워해야 하고 어떻게 지탱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둠 속에 두 눈이 박혀있고, 그 눈을 통해 우리들을 지켜보는 어떤 존재가 있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에 침을 꼴깍거리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어떤 놈인지 당장 나와, 아랫배를 따 버릴 테니까...”

팔뚝만 한 사시미를 꺼낸 윤삼식이 으르렁거렸지만 단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허세라는 것이 느껴졌다. 짧게 깎은 머리에서 생겨난 땀들은 헤드램프의 불빛 탓인지 핏방울처럼 보였다. 극에 달하던 긴장감은 맑은 금속성 소리가 바닥을 구르는 탓에 깨져나갔다. 엘로드를 떨어뜨린 박금봉이 뒤통수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미안들 혀. 내가 겁을 먹으면 손끝이 떨려서 말이여. 어, 워매...”

박금봉의 손에 쥐어진 엘로드가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머리를 흔들더니 아까 닫힌 문쪽으로 향했다.

“내가 흔든 거 아녀. 기냥 저절로 움직인겨, 정말이라니까...”

박금봉의 빠른 속삭임과 함께 엘로드의 머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문의 왼쪽 벽으로 기울어졌던 엘로드는 천천히 들썩거리더니 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느낌 탓인지 엘로드의 머리가 가리키는 벽 너머에서 누군가 사뿐히 걷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도...

“애, 애기 엄마 아녀? 얼라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조용히 입 좀 다물고 있어요.”

박금옥의 말에 박금봉이 인상을 쓰면서 윽박질렀다. 그 순간에도 엘로드는 마치 눈으로 무언가를 지켜보는 것처럼 천천히 머리를 틀면서 발자국 소리를 뒤쫓아 가는 것 만 같았다. 아이 울음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사라져버리자 박금봉의 손에 쥐어져있던 엘로드도 생명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누군가 내뱉은 뜨거운 한숨 소리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만 같았다. 그리고 천천히 닫혔던 문이 열렸다. 어둠의 틈이 벌려지면서 통로가 입을 벌렸다.

“시방 우리를 놀리는겨 뭐여?”

떨리는 손으로 사제 권총에 총알을 장전한 이무생이 침을 튀기며 중얼거렸다.

“일단 나가봅시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긴 사시미를 끼워 넣고 리볼버 권총같이 생긴 가스총을 꺼내서 양손에 움켜쥔 김달호가 말했다.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가긴 어딜 나간단 말이여.”

“당신이 앞장서. 이 재수 없는 방에서 나간 다음에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들어야 하니까...”
이무생의 말을 무시한 김달호가 손가락으로 차재경을 가리키며 또박또박 말했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차재경이 미동도 하지 않자 윤삼식이 다가와서는 거칠게 팔을 당겼다.

“지금 우리 형님 얘기가 안 들려? 얼른 움직여. 안 그러면 똥 꾸멍에 사시미를 꽂아 넣을 테니까.”

윤삼식의 팔을 가볍게 뿌리친 차재경은 별다른 두려움이나 고민 없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녹색의 빛이 번뜩이는 문을 잡아당겼다. 통로 쪽 문 위에 자리 잡고 있던 방향지시등에서 뿜어져 나왔던 녹색 빛은 틈이 벌어지면서 엷어졌다. 통로로 걸어 나간 차재경은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서서 말없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달호도 바닥을 쳐다봤지만 둘의 표정은 불과 얼음처럼 극과 극이었다. 사람들은 호기심과 언제 문이 도로 닫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까보다는 더 빨리 바깥으로 나갔다. 나간 사람들의 시선들 역시 바닥으로 못 박혔다. 최민우의 호들갑이 들렸다.

“오 마이 갓! 이거 다 블러드 아니에요?”

바닥은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거대한 손톱이 긁고 지나간 것처럼 서너 개의 붉은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서 그 붉은 줄을 손가락 끝으로 찍어서 비벼보았다. 혹시나 해서 코끝에 대고 냄새까지 맡아보았다. 명확히 사람의 몸에서 나온 피였다. 그것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싱싱한 피였다. 나는 물기가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비닐 우의에 손가락을 쓱쓱 비비고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진짜 피가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숨이 막힌다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의 긴장을 풀어줄 속셈으로 덧붙였다.

“제가 이래 봬도 젊었을 때 고시 공부하느라 이틀에 한 번씩 코피를 쏟았거든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설명할게 한 가지 더 늘어났군요. 선생. 하나도 빼놓지 말고 설명해야 할거요. 난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니까...”
김달호가 차재경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흔들면서 말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선상님한테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여. 아무리 배운 것 없는 깡패 양아치라고 혀도 지킬 건 지켜야제.”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선 이무생의 삿대질에 윤삼식이 눈을 부라렸다.

“이놈이 영감이 어디서 함부로 나서고 지랄이야!”

“아까 배때기에 구멍 낸다고 했제. 네놈 배때지에 이거 들어가면 어떨지 한번 볼까? 나도 소싯적에는 평택 바닥을 휩쓸고 다녔어.”

이무생은 윤삼식의 아랫배에 사제 권총을 들이대고는 윽박질렀다. 짧은 욕설과 함께 뒤로 물러선 윤삼식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이 씨발놈의 영감탱이 전기구이로 만들어버린다.”

“그전에 네놈 명줄이나 걱정 혀. 이 정도면 눈 감고 쏴도 빗나가지 않을 테니까...”

“모두들 그만하시죠.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차재경의 말은 또다시 마법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길게 이어진 붉은 핏줄기를 밟고 선 차재경이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시선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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