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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 "방청권 얻기, 별따기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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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가 내리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앞엔 한 손에 우산을, 다른 한 손엔 방청권을 쥐어든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하는 '개그콘서트'(3일 방영분)의 녹화를 방청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개그콘서트'의 방청권을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매주 인터넷을 통해 방청권을 신청하는 4만~5만명 중 불과 8백여명(4백25장의 방청권 발부, 한장으로 두 명 입장 가능)만이 행운을 잡을 수 있을 뿐이다.

이날 여자 친구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보러온 김영민(서울 정릉.25)씨는 "열번 도전 끝에 간신히 방청권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여자 친구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주고 싶다'는 사연을 A4 용지 석장 분량으로 구구절절 늘어놓은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개그콘서트'의 경우 방청권을 구한 것만으로 치열한 경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선착순 입장이기 때문에 앞자리에 앉기 위해 오전 10, 11시부터 줄을 서는 사람이 상당수다. 이들의 딱한(?) 처지를 보다못해 방송국 측이 선착순 90명까지는 번호표를 발부해 식사나 볼 일을 위해 잠깐 줄에서 자리를 비울 수 있도록 선처하기까지 했다.

"2년이나 걸려 방청권을 받았는데 뒷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못본다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마침 방학이라서 작심하고 아침부터 기다렸죠."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지은(서울 신촌.23)씨는 고생 끝에 본전을 뽑게 됐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비단 '개그콘서트'만의 풍경이 아니다. 방송 3사마다 공개방송을 하는 오락프로그램 방청권을 놓고 시청자들 사이에 '소리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평소 열광해 마지않던 스타들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는데다 공짜로 남다른 문화체험을 즐기는 재미 때문에 방청권 신청자들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처음엔 프로그램 제작진이 주먹구구로 하던 방청권 관리를 최근엔 자회사 직원이 전담(KBS 개그콘서트, MBC 생방송 음악캠프)하거나 아예 외주 회사가 맡는(KBS 폭소클럽,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 전문화하는 추세다.

'개그콘서트'만 해도 자회사인 KBS인터넷의 전담인력 두 명이 일주일 내내 방청권 관리에 달라붙어 있는 지경이다. "수만통의 사연을 일일이 읽어보고 꼭 방청권을 보내줘야 할 사람을 선정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KBS인터넷의 유승엽씨는 고충을 토로한다.

수많은 신청자 중 몇 백명만 추려내는 일이 이처럼 힘들다 보니 MBC '생방송 음악캠프'의 경우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려 무작위로 방청권 당첨자를 가리기도 한다. iMBC의 고윤정씨는 "담당자가 아무리 잘 골라도 시비가 없을 수 없다. 차라리 컴퓨터로 돌리는 게 공정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사실 신청자 증가에 따른 업무량 폭주 외에도 방송사들이 방청권 관리를 자회사나 외부 회사에 맡기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바로 민원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다.

방송사 직원치고 친척이나 친구들에게서'○○ 프로의 방청권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안 받아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정연주 KBS 사장은 취임 직후 한 간부회의 석상에서 "KBS 직원들 중에서 개그콘서트 제작진에게 표(방청권) 구해달라고 청탁하는 것을 근절하라"고 지시했을까.

이처럼 민원에 시달리고, 신청 사연에 파묻히면서도 방송사 관계자들은 싫은 기색이 아니다. 방청권의 인기는 곧 프로그램의 인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신예리 기자

사진= 김태성 기자

<사진설명>
일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KBS '개그콘서트'의 방청권을 따내 지난달 28일 여의도 공개홀에 나타난 사람들. 이들 중 몇몇은 아침부터 줄을 선 끝에 가설 천막 안에서 기다릴 수 있는 '특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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