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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증인선서 강화하고 ‘거짓말=불명예’ 인식 자리잡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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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11면

행동경제학 권위자인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교수는 45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학생들을 절반으로 나눈 뒤 한 집단에는 십계명을 외우게 하고, 다른 집단에는 고교 때 읽은 책 10권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이후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시험을 치렀다. 그 결과 십계명을 외우게 한 집단에서는 부정행위가 없었지만 나머지 집단에서는 부정행위가 속출했다. 애리얼리 교수의 책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 나오는 이 실험은 ‘도덕적 각성장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부정행위를 막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위증·무고 등 ‘거짓말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한 대책으로 이 같은 도덕적 각성장치의 강화를 제시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덕관념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할 수 있는 만큼 제도적 장치로 이를 보완해 ‘정에 이끌려’ ‘마음이 약해서’라는 이유로 법정까지 나가 거짓말하는 상황을 막아 보자는 얘기다. 요식행위처럼 진행되는 법정·청문회장에서의 ‘증인선서’를 당사자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게 강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떤 이유에서건 거짓말하는 것은 매우 창피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거짓말에 대한 사회적 거부반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각성장치와 함께 제도 자체의 거짓말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작업도 필요하다. 선진 외국처럼 사법 절차 내에 거짓말을 막는 정교한 장치들을 두는 방식이다. 선서하지 않은 상태의 진술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독일 형법은 153조에 ‘선서 없는 허위 진술(Falsche uneidliche Aussage)’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법원 등 관청에서 선서를 하지 않은 상태라도 거짓으로 진술했을 때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독일인 변호사는 “독일법은 증인의 자기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해 주는 대신 거짓말에 대해서는 관대함이 전혀 없다. 보장해 줄 것은 철저하게 보장해 주지만 책임도 엄격히 묻는다”고 말했다.


미국·영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디스커버리(discovery·본안 전 증거 조사) 제도도 법정에서 거짓말을 막을 수 있는 장치다. 디스커버리는 재판 시작 전 양측이 요구하는 사건 관련 문서 등을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절차다. 미국계 로펌 셰퍼드 멀린 김병수 변호사는 “민사소송에서도 상대가 내가 가진 서류나 e메일 등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 증거에 맞지 않는 거짓 진술을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을 간파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수사관들은 평상시와 다른 행동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 범죄행동분석팀장의 설명이다.


“만성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허언증 환자가 아닌 한 평범한 사람들은 허위 진술 시 대체로 말이 많아진다. 듣는 사람은 그 정도면 된 거 같은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계속 설명을 하게 돼서다. 단편적 사실 하나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평상시보다 말이 많아지는 것은 중요한 거짓말의 징후 중 하나다.”


비언어적 표현도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한국인의 거짓말』 저자인 김형희 바디랭귀지연구소장은 “침 삼키기, 눈 깜빡임,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 등이 평상시보다 늘거나 침묵시간을 길게 가지는 행동의 경우 거짓말의 징후로 볼 수 있다. 비언어적 표현은 인간의 의지로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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