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예고된 코스닥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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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코스닥지수가 10%가량 급락한 23일, 이른바 '검은 월요일'의 충격을 한 증권사 지점장은 이렇게 전했다. 이날 코스닥시장은 하루 종일 파랗게 질렸다. 코스닥 사상 처음으로 서킷 브레이커(일시 매매정지)도 발동됐다. 주가가 10% 이상 급등락할 때 열을 식히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이 제도는 도입 뒤 5년간 한번도 발동된 적이 없었다. 24일 주가가 모처럼 반등했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좀체 가시지 않고 있다.

코스닥 폭락의 원인을 놓고 이런저런 분석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코스닥 폭락은 예고된 참사였다. 개인이나 기관투자가는 물론 증시 유관 단체들과 관계 당국 등 시장 참여자 모두의 과도한 욕심과 태만이 낳은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몇 달 전부터 경고 신호를 곳곳에서 보냈다. '허름한' 중소업체의 공모에 많게는 조(兆) 단위의 돈이 몰릴 만큼 '묻지마 투자'가 판쳤다. 연예인 몇몇만 주주라고 내세우면 보름 넘게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는 종목이 나오기도 했다. '테마 광풍'과 '거품 주가'가 극성을 부린 것이다.

이성과 냉정은 자취를 감췄다. 증권사들은 모처럼 찾아온 '대박장'이라며 앞다퉈 외상거래(미수금)를 늘리고 수수료 챙기기에 바빴다. "최근의 시장 하락은 일부 기관의 단기적인 운용 행태와 미수금을 예탁금의 20%까지 늘린 증권업계의 고질적 단기 업적주의의 산물"이라는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의 쓴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다. 온갖 루머와 불공정 공시가 판쳤지만 감독 당국은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감시와 감독의 끈을 되레 풀어버렸다. 게다가 증세(增稅)를 거론하며 시장 불안감을 부추기기도 했다. 물론 증권가의 장밋빛 낙관론을 기계적으로 옮긴 언론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

마냥 네 탓 공방만 할 수는 없다. '검은 월요일'이 또 찾아오지 않도록 하려면 이제라도 투자자.정부.언론 모두 과도한 욕심과 태만이라는 고질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표재용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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