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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 "박물관은 지금 카메라와 전쟁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1일, 국립중앙박물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 국보 유물인 백제 금동대향로를 찍은 한 여성에게 자원봉사자가 제지를 한다. 자원봉사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물을 전시하면서 마구 플래시를 터트린 이 여성은 “이렇게 찍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며, 오히려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각 박물관이 요즘 카메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물에 마구 플래시를 터트리는 관람객들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는 물론 직원들까지도 눈코뜰 새가 없다.

그림, 조각품 등 오래된 유물에 카메라 플래시가 가해지면 적외선 빛으로 인해 형태 변질 등의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때문에 각 박물관은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한에서 촬영을 허용하거나 아예 사진 촬영을 금지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를 어기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며, 부끄러운 관람 문화를 보이고 있다.

플래시를 터트리거나 삼각대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원봉사자나 관리자가 잠시 눈길을 돌리면 바로 사진을 찍는 교묘한 수법을 사용한다.

사진을 찍다가 지적을 받아도 오히려 이들은 더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오직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그들은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많이 셔터를 눌러 댄다.

사진 촬영 금지인 유물에서도 이들은 당당하다.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도 관리 요원들에 잘 눈에 띄지 않는 유물 뒤편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진 촬영 금지’인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신문박물관에는 입구에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는 경고문을 붙인 것은 물론 CCTV를 설치해 이를 관리하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CCTV나 관리요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묘하게 사진을 찍은 사람이 하루 한두명정도 보이곤 한다. 이들은 자녀들의 방학 숙제로 증빙 자료를 남기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이에 대해 박물관 관계자는 어떻게 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관리요원은 “하루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터뜨리니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게 된다”며, “기본적인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는데 무슨 문화 강국이니 어쩌니 하겠는가”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른 관리요원도 “박물관에서 퇴장시키거나 벌금을 부과시키든지 하는 강한 처벌이 있어야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반 관람객들은 ‘이러한 잘못된 문화에 대해 직접 자발적으로 지적해야 할 것’이라며, 문화적인 시민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김연성(30) 씨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플래시가 터지지 않게 하도록 조절해주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연준(21) 씨는 “조그마한 배려로 남들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사진 찍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감상하면서 제대로 유물을 느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지한 /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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