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노사분규의 영향을 살펴본다|중소기업 자금압박 위험수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중소기업이 연쇄도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6일 이래 2차에 걸쳐 장기휴업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계열 부품회사의 경우 30여개 업체가 직접 분규에 휘말리거나 모기업의 조업중단으로 연쇄휴업중인데 이같은 사태가 오는20일 이후까지 계속될 경우 상당수의 영세부품업자들이 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실정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이회사에 직접 부품을 납품하는 1차계열 업체는2백90개사, 이들 1차계열회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2차계열 회사까지 합하면 1천2백개사에 달하고 있다.
1차납품 회사는 부품을 납부한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차례에 걸쳐 대금을 받는데 3백만원 미만은 현금으로, 3백만원을 넘는 경우는 30∼50일짜리 어음을 받고있다.
1차납품업자들은 이 돈으로 근로자들의 임금을 지불하고 2차납품업자들의 납품대금을 지불하게된다.
그런데 2주째 접어든 현대자동차의 장기휴업으로 1차납품업자들은 이미 2∼4차례나 돈을 만져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납품업자들중에는 종업원 50명 미만의 영세업자로부터 1천명 가까운 대기업까지 규모나 자금면에서 큰 차이가 있고 현대 한곳에만 납품을 하는 업체로부터 많은 거래선을 확보하고 있는 업체 등 사정이 제각기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금압박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고 특히 1주일에 두차례 대금을 받아 회사를 꾸려나가는 영세업자들은 당장은 사채 등으로 변통을 하고있지만 모기업의 휴업이 조금만 더 장기화될 경우 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
이같은 사정은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대우자동차·기아기업 등 자동차 3사에 공통되는 일이며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하다.
다행히 대우중공업·한국중공업은 분규가 타결되었으나 대우중공업이 거느리고 있는 1차 기자재공급업체 2백60개사나 한국중공업이 거느리고 있는 1, 2차 계열회사 합계 1천5백개사도 비슷한 위험수의에까지 갔었다는 얘기다.
부품납품과는 달리 대기업으로부터 원자재를 공급받아 공장을 돌리는 중소업체들도 위기에 처해있기는 마찬가지다. 원자재 공급이 중단되면 일손을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한인합섬·동양나일론·태광산업의 휴업으로 1만여개에 달하는 봉제 .의류·완구업자들이 원자재난을 지금까지 겪고 있는 것은 갈 알려진 얘기지만 한 일 합섬 한 회사의 휴업이 조금만 더 장기화 되었어도 원자재를 미리 확보해 놓지 못한 영세업자들의 도산이 속출했을 것이란 얘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루 혹은 이틀만 타결이 늦었어도 몇개 업체가 문을 닫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실정이었다고 말하고있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의 목을 죄는 위험이 아직도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경우 모기업이 정상가동을 하고 싶어도 부품업체중 대체 가능성이 없는 부품회사가 분규에 휘말리면 아무리 거대한 모기업이라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고 그 영향은 바로 다른 수백·수천개의 계열회사에 파급된다.
또 정상가동이 된다해도 대기업들이 임금을 10∼15%씩 추가로 올려놓으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중소업체의 임금인상 압력으로 작용하는데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영세업자들은 문을 닫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업계에서는 임금인상 열풍이 지금처럼 확산되는 경우 적지 않은 한계기업이 도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대기업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이 자기 몫을 더 내놓으라고 일으키고 있는 분규는 자칫 더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의 생계마저 뺏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아이러니를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올들어 원화절상으로 수지압박을 받기 시작한데다 태풍·홍수 피해까지 본 중소업체들이 이제는 노사분규까지 겹쳐 더 이상 갈곳이 없는 절박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중소기업 문제는 이제 가장 위험스럽고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신성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