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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정 농단 수사, 이재용 영장 청구가 본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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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오늘 중 결정한다고 한다. 특검은 어제 “사안이 복잡하고 중대하다”며 당초 일정을 늦췄다. 특검의 이런 고민이 영장 청구를 위한 명분 쌓기인지 아니면 영장 기각 시 후폭풍을 의식한 것인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특검 주변에선 영장이 기각될 경우 전체적인 수사 동력 상실까지 걱정하는 분위기다.

박 특검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법률’에 따라 발족했다. 법률 명칭 그대로 ‘최순실 등 민간인의 국정 농단 수사’가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도 활동기간 70일의 절반 가까이 지나도록 본류인 박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수사에 앞서 지류(支流)인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혹만 집중적으로 파헤쳐 왔다. 그렇다고 이 부회장이 뇌물 혐의를 인정하기도 어렵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한 ‘공공의 적(敵)’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말이 전도되면서 특검 수사의 성패가 마치 이 부회장 영장 청구에 달린 듯한 구도로 변질돼 버렸다.

현 단계에서 특검이 이 부회장 인신 구속에 집착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구속이 곧 처벌’이던 시대는 지났다. 수사 및 형사재판에서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기 시작한 건 10년 전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헌법 27조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했고 대법원도 “인신 구속은 최소한의 경우에 한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지난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도 기각되지 않았는가.

최근 특검은 국회에 수사 대상 9명을 위증 고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무더기로 출국을 금지시켰다. 특검이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원하는 자백을 받기 위해 출국금지, 위증 고발, 구속영장 청구 카드로 압박하는 게 아닌지 짚어볼 때다. 향후 최악의 시나리오는 특검이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한 뒤 기각될 경우 사법부가 여론의 후폭풍을 감당하라고 떠미는 것이다. 이런 무책임한 여론 수사와 여론 재판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특검은 이제부터라도 구체적 증거에 입각해 영장 청구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