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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재인과 민주당은 사드에 분명한 입장 밝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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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종잡기 어렵다. 대권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15일 “한·미 간 합의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중국·러시아를 설득하고 국회 비준 등 공론화를 거치자”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자 ‘재검토’를 주장하며 정부를 맹공해 왔다. 그러다 촛불 정국부터는 “차기 정부로 결정권을 넘기라”고 말을 바꾼 데 이어 돌연 ‘현실론’을 내세우며 또다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한마디로 갈팡질팡이다.

대선 표 의식해 모호한 이중 플레이
안보 위기에 제1야당 책임감 안 보여
안희정의 ‘사드 불가피’ 소신 배워야

문 전 대표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사드를 배치하자는 것인가, 말자는 것인가. 언제까지 답변을 회피하며 말 바꾸기를 할 것인가. 지지층을 생각하면 ‘배치 반대’를 밀고 싶지만 보수층의 공격과 중도층의 이탈을 우려해 이도 저도 아닌 회색 메시지만 발신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상호 원내대표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경북 성주를 찾은 자리에선 “사드 반대를 당론으로 한다고 약속한 적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4일 사드에 비판적인 당내 분위기를 전하러 중국을 찾아간 송영길 등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선 “트럼프도 왕이도 만나는 게 민주당 외교”라며 감쌌다. 사드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는 이재명·박원순 시장에 대해서도 침묵만 지키고 있다.

한·미 연합전력을 북한의 핵 미사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사드에 대해 이렇게 모호하고 이중적인 처신으로 일관한다면 민주당은 수권 정당의 자격이 없다. 설사 집권해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충돌해 안보 위기를 부를 공산이 높다. 트럼프의 성향으로 볼 때 한국이 사드 배치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소하며 한반도를 지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나마 “합의를 뒤집는 건 경솔하다”며 사드 수용 원칙을 분명히 한 안희정 충남지사에게서 희망을 본다. 지금 한반도 안보 위기는 전례 없이 격화돼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임박을 거론하며 핵 위협 강도를 올리자 미국 트럼프 당선인 측은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초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또 중국은 사드, 일본은 군 위안부 합의를 걸고넘어지며 압박 외교를 펼치고 있다. 오죽하면 미·중·러·일·유엔 등 5강 주재 대사들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한데 모여 대책회의를 열 지경이 됐겠는가. 안 지사의 발언은 이런 냉혹한 현실을 직시한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대선 공약은 주자마다 다양할 수 있지만 외교·안보만큼은 최대공약수 도출이 절실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진 안보 위협을 직시하고 반미·친북 프레임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것만이 불안에 떠는 국민을 안심시켜 집권에 이를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