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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지금 우린 박종철이 꿈꾼 세상일까…30년 전 그날 2단짜리 기사는 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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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특종 1987
신성호 지음, 중앙북스
240쪽, 1만4000원

1987년 1월 15일 오전 9시 50분 경. “경찰, 큰일 났어.” 대검 공안4과장 이홍규 검사의 말에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큰일을 직감하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어진 이 검사의 말.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이로써 이홍규 검사는 딥 스로트, 익명의 제보자가 됐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이 있는 남영동에서 사망했다는 정보까지 들은 신 기자는 긴박한 취재에 들어갔다.

낮 12시 조금 지나 송고를 마쳤을 때 윤전기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가판 신문 일부와 가정 배달 신문에 서울대생 박종철 사망 최초 보도가 실렸다. 경찰은 은폐, 조작을 꾀하고 당국은 언론을 압박했지만 고문치사의 진상이 속속 밝혀졌다. 6월 시민항쟁과 6·29선언, 개헌국민투표와 16년만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 ‘87년 체제’의 시작이었다.

그날의 신성호 기자, 이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신성호 교수는 숨 가빴던 1월 15일을 시간별로 정리하고 사건 전후 1년을 재구성한 뒤 자세한 배경과 전말, 관련 인물, 언론의 현실과 역할 등을 조명한다. 책의 열쇠말은 ‘언론’과 ‘민주화’다. 먼저 이 책은 1980년대 언론 현실을 전하는 르포르타주이자 언론사(言論史)다.

그 시기 언론은 정권의 폭압 아래 숨죽여야 했지만, 1987년 1월 15일의 짧은 2단 기사 이후 민주화 물결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에서 언론이 수행 중인 역할의 선례인 셈. 오늘날 언론사들의 지나친 정파성, 자사 이기주의, 취재윤리 부족을 지적하는 저자의 목소리도 준엄하다.

둘째로 이 책은 민주화 역사의 엄정한 기록이다.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된 시민항쟁과 승리의 과정을 정리한 하나의 통감(通鑑), 즉 역사를 통한 거울이다. 광장의 촛불 민심이 비등하는 지금 들여다봐야할 거울이다. 저자가 묻는다. “우리 사회는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원하던 모습이고, 박종철이 꿈꾸던 세상인가?” 만일 아니라면 “박종철 사건은 30년 전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것이 우리가 박종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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