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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험하고 사나운 팔자 타령 실컷 짖어보니 책이 한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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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7일 저녁 출판기념회에 나온 58년 개띠 저자들. 왼쪽부터 장용철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김상철 궁평아트센터 관장, 위영란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 이재무 시인, 이승철 시인, 이진영 도서출판 문학과경계 대표, 정영희 소설가, 서애숙 시인, 방남수 도서출판 화남 대표, 방송인 임백천씨. [사진=안성식 기자]

58년 개띠. 출생연도와 띠가 하나의 관용어로 굳은 유일한 세대다. 그러나 1958년 태생만 굳이 관용어가 인정되는 까닭은 모를 일이다. 58년생이 도드라지게 많은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 한 인물도 없었다. 하나'58 개띠'는 여전히 통용된다. 흥미로운 건, 그들보다 앞뒤 세대는 일종의 비아냥을 이 호칭에 담는다는 점이다. 58년 개띠 스스로 '58 개띠'라 부를 때는 어떠한 피해의식 따위가 섞인다.

병술년 개의 해를 맞아 58년 개띠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58년 출생 27명이 자신의 지난 날을 담담히 되돌아 본 산문집 '58 개띠들의 이야기'(화남)다. 국회의원 정병국, 방송인 임백천, 시인 이재무.이승철.서애숙, 소설가 이대환.임영태.정영희, 화가 류연복 등 면면이 다채롭다. 17일 저녁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느 출판기념회보다 유독 시끄러웠다.

"육갑을 짚어보니 무술년(戊戌年)이더라. 무술년에는 전생에 못된 짓을 한 남자가 여자로 환생하는 해다. 그러니 팔자가 험할 수밖에. 내 팔자 하도 막막해 따져봤더니 이렇게 나오더라고."

명리학을 공부했다는 소설가 정영희씨의 팔자 타령이다. 개가 한 번 짖기 시작하면 동네 개 모두 짖는다고, 타고난 팔자부터 글렀다는 운명론이 제기되자 여기저기서 험난했던 팔자 자랑이 쏟아졌다. 사연들 모아보니, 격정의 한국 현대사가 얼추 재구성될 판이다.

농사꾼이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초등학교 때 가출을 결심했다는 정병국 의원의 소회엔 한국전쟁 직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아픔이 쟁여있었다. 이재무 시인은 "이승복과 동갑이었다는 게 싫었다"고 어릴 적을 기억했다. 반공소년 이승복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책하며 성장했다고 시인은 털어놨다.

또 58 개띠는 이른바 '뺑뺑이'1세대다. 그들이 중.고교 입학을 앞뒀을 때마다 입시가 없어진 것이다. 그들 사이엔 동갑내기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방송인 임백천씨는 "한꺼번에 사회에 쏟아지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4.19 세대처럼 뜨거운 청춘을 보내지도 못했고, 80년대엔 386 세대에 치였다. 이승철 시인의 말마따나, 58 개띠는 "위로부터는 반항적이라는, 아래로부터는 권위적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낀 세대"였다.

"안정을 생각할 마흔 줄이 되니까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리고 어느새 쉰을 앞둔 나이다. 오늘 사회는 우리를 '사오정'이라 부르며 퇴출을 강요한다. 물론 57년생도, 59년생도 비슷할 것이다. 어차피 모질었던 58 개띠들이 또래의 상처를 대신해 시원하게 한번 짖는다고 생각해달라."

자리를 정리하며 방남수 시인이 말을 남겼다. 왁자지껄했던 자리, 일순 숙연해졌던 것 같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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