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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통피니언] ‘병신년’ ‘정유년’은 풍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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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손민지

지난해 국민을 큰 충격에 빠뜨린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는 우리 사회에 어마어마한 분량의 풍자와 패러디를 양산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와 유튜브, 포털사이트, 방송 등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쏟아진 이러한 콘텐트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기사와 뉴스들도 사람들의 인식을 돕지만 풍자와 패러디는 보다 더 다양한 계층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모든 풍자와 패러디는 다 옳은 것일까. 비판이라기보다 비난에 가까운 부적절한 표현이나 의견은 없었는가. 해학적인 풍자와 부적절한 비난의 차이는 무엇일까. 눈살 찌푸리게 하는 표현은 말하는 자의 무지함을 드러내고, 사태의 심각성을 되레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는다. 풍자와 패러디에 깃든 불편한 진실을 조명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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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무한도전' 캡처, MBC]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등에 대한 풍자는 뉴스나 시사프로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단골 소재였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언급이 됐다. 특히 '우주의 기운'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됐는데, 드라마 '옥중화'에서는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라네”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말은 박 대통령이 브라질 방문과 어린이날 행사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는 브라질 출신 작가의 소설 문구를 인용한 데서 시작됐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로 꼽히는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구절이다.

하지만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사실이 드러나고 두 사람의 평소 어투가 탄핵 정국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면서 이 말도 곧 대통령에 대한 풍자의 영역이 되었다. 청와대에 초청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검정 역사교과서에서 대해 “어떤 부분이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가”라고 물었을 때도 박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라고 답해 대통령이 '우주'니 '기운'이니 하는 비과학적인 단어를 즐겨 쓴다는 인상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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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무한도전' 캡처, MBC]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무엇으로도 국민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즉각 논란을 일으켰다. 수많은 시사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러려고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를 자막으로 사용했으며, 일상생활에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인터넷에서는 뉴스에서 보도한 대국민 담화 영상의 일부를 캡처해 패러디 사진에 이용하고 있다. 따로 패러디 사진을 만드는 사이트도 있다. 이런 글과 사진들 덕분에 그동안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이 사태를 잘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게 됐다. 그러한 국민들이 한 마음을 모아 광화문 집회 때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걸 보면 패러디의 사회비판적 기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카카오톡에 해당 문구가 추가됐다. [사진=카카오톡 캡처]

카카오톡에 해당 문구가 추가됐다. [사진=카카오톡 캡처]

하지만 무조건적인 패러디는 조금 과하다 싶은 것도 있다. 아무런 깨달음이나 교훈 없이 웃음만을 남기는 것이다. 어떻게든 웃기겠다는 이런 패러디는 사태를 건전하게 풍자하기보다는, 그저 유행어라서 이 흐름에 한 번 동참해 보자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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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개그콘서트' 캡처, KBS]

대표적인 예로는 개그콘서트를 들 수 있다. 개그콘서트도 한때는 현 시국을 적절히 비판하는 수준 높은 개그를 펼쳐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 보면 게으른 상상의 뻔한 개그만 늘어 놓는다.

"병신년이 가고 2017년 정유라 아니 정유년이 밝았습니다."

새해 첫날 개콘의 '대통형' 코너에서 대통령 서태훈이 읽은 대국민 신년사다. 대통령을 겨냥한 이 말에는 명백히 '장애인 혐오', '여성 혐오'가 내포돼 있다. 상황의 본질은 제대로 따지지 못하면서 남들 다하는 손쉬운 비난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 프로에 뭘 그리 심각하게 지적하냐 싶겠지만 이런 일은 정치인의 SNS에서도 재생산되고 있어 문제라고 생각한다. 표창원 더민주 의원은 "병신년, 정유년"이라 썼다 지적을 받고 사과했다. 이밖에도 "대통령이 여자라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지만이(박 대통령 동생)가 했으면 잘했을 텐데" 하는 여성차별적 발언들이 난무한다. 래퍼 산이(San E)는 '나쁜X(Bad Year)'이란 노래를 촛불집회를 앞두고 기습 발표해 시국을 이용한 마케팅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비판'과 '비난'은 엄연히 뜻이 다른 단어다. '비판'이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이며, '비난'이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음'이라고 사전에 명시돼 있다.

우리는 잘잘못을 가리고 고쳐 나가야 한다. 하지만 혼란스런 상황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건 중요한 사실이 아니며, 이번 사태와 ‘여성’을 엮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결혼을 안 해서, 애를 낳아보지 않아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결혼과 출산을 안 해 본 평범한 사람은 얼마든 있지 않은가.

[사진=네이버 카페에 달린 네티즌의 댓글 캡처.]

[사진=네이버 카페에 달린 네티즌의 댓글 캡처.]

'풍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주어진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 비꼬아서 표현하여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과거 신분 사회에서 힘 없는 백성들이 해학적인 풍자나 비유를 통해 집권층을 조롱하고 힘든 현실에 대한 위안을 받았다. 지금은 다르다. 많이 이야기하고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면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국민들의 나라다. 주체의식을 갖고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자.

글=정유진(한영외고1)·손민지(가락고1) TONG청소년기자 방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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