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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I 68…기업 체감기온, 외환위기 때보다 더 떨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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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구에서 산업용 밸브를 만드는 A사는 “거래 업체가 대금결제를 미루고 있어 돈이 돌지를 않는다. 은행에서도 만기 연장을 꺼리고 있어 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 성장 둔화, 국정 혼란에 불안
1분기 BSI, 1998년 75보다 낮아
백화점 매출 -2.8%, 유통도 빙하기
“저성장 시대, 경영 패러다임 바꿔야”

전주에서 승강기를 제조하는 B사도 “지난해 수출이 40%나 줄었다. 직원을 새로 뽑기는커녕 기존 인력도 내보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의 이런 어려움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하는 기업경기전망지수(BSI) 조사에 그대로 반영됐다.

9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1분기 BSI는 68로 전 분기(86)보다 18포인트나 하락했다. 수치로만 보면 거의 외환위기 당시를 방불케 한다. 1997년 4분기 93이었던 BSI는 외환위기의 충격 탓에 이듬해 1분기 75로 18포인트 떨어졌다. 오히려 절대 수치는 지금이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낮다. 전국 2400여 개 제조업체에 설문 형식으로 조사하는 BSI는 100을 기준으로 경기에 대한 전망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한다.

이종명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지난 분기에 비해 어떨 것 같은지를 묻는 상대적 조사라 수치만 보고 지금 경제 상황이 외환위기 때만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이 느끼는 위기감은 당시 못지않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체감경기가 악화된 이유는 대내외적 여건이 모두 나빠서다. 기업들은 이번 조사에서 대외적 요인으로는 ▶중국 성장률 둔화(42.4%)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32.3%)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금융여건 악화(28.4%)를 들었다. 국내 악재로는 ▶국내 정치 갈등에 따른 사회혼란(40%) ▶자금조달 어려움(39.2%) ▶기업 관련 규제(31.6%)를 많이 꼽았다.

실제 기업 실적도 설문조사만큼이나 좋지 않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 침체하면서 2010년 18.5%였던 제조업 매출증가율이 지난해 -3%까지 떨어졌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시장 경기 침체, 중국의 성장률 둔화 때문에 한국 기업이 안팎으로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암울한 전망에 따라 기업 새해 경영방침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한 기업이 65.1%로 가장 많았고, 채용은 줄이거나 지난해 수준(49.6%)이라고 응답했다. 설문에서 기업은 올해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소비심리 회복’(55.7%)을 꼽았다. 실제로 한국은행 조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해 10~12월 3개월 연속 하락했다. 12월 기준 94.2로 7년9개월 만의 최저치다.

유통업계에선 이미 ‘소비 빙하기’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유통업체 매출은 전해 같은 기간보다 6.5% 증가했지만 온라인 유통업체만 성장했다. 온라인을 제외한 백화점(-2.8%), 대형마트(-6.1%) 등 오프라인 업체는 매출이 감소하면서 고전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 (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성 조치로 면세점의 관광객 수가 줄면서 지난해 11월 기준 면세점 이용객은 전월 대비 17.7%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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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성장이 새로운 기조가 된 만큼 경영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불황이라고 무작정 투자를 줄이기보다는 4차 산업 등 미래 경쟁력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경기전망지수(Business Survey Index)

경기동향에 대한 기업의 판단·예측·계획·추이를 관찰하기 위한 지표로, 다른 경제지표와 달리 기업의 주관적·심리적 요소를 파악한다. 100 이상이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고, 100 이하면 그 반대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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