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심이 천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공산주의에 대한 최대의 무기는 민주주의다」-이것은 미국의 민주당원들이 한 말이 아니고, 모만의 장경국이라는 사람이 한말이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반공주의군가 한 말이니까 경청할 만하다. 장장 40년 동안의 계엄통치를 거두면서 한 말이니까 마냥 빈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저 유명한 「본토수복」이라는 것은 어떻게되는 것일까. 장총통이 이해하고 장차 모만사람들이 누리게될 민주란 어떤 내용의 것이 될까. 지난40년동안 우리가 부르짖고, 좌절하고 다시 애타게 갈구해온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이박사 이래 백성위에 군림하고, 호령하고 때로 왕조때의 양악을 재현하는 듯한 모진 짓을 애국과 반공의 이름으로 서슴지 않았던 우리통치자들 한테서 왜 반공의 최대무기가 민주주의라는 명쾌한 단언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
「본토수복」과 우리의 「통일」「반공」「민주주의」는 지난40년 동안 한국과 모만의 백성들이 그것 없이는 한시도 편히 살수없는 대지도 이념이 되어왔다. 함부로 거론하다가는 패가망신하기 일쑤인 엄청난 명제이기도 했다. 그중 「본토수복」은 우리와는 무관하다. 「통일」은 여기서는 일단 접어두자. 반공을 하기 위해서,「히틀러」유의 폭행과 전제와 전체주의의 광란을 백성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장총통이 설파한 것처럼 민주주의를 키우고 가꾸어서 하는 반공이라면, 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모만에도 이땅에도 별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뿐 아니라, 온 문명된 인류가 희구하는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주의이고, 민주시민이 영위하는 사회와 생활이 어떤것이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그 내용과 질과 정도를 서로 달리한다. 민주주의라는 말의 함축이 무척 다양해서, 그 머리에 자유니, 의회니, 심지어는 교도니 하는 한정수식어를 붙여서 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공견당식 민주주의는 물론 논외다. 거두절미하고 민주주의, 민주주의자, 민주화해서는 정확하게 무슨 소리인지 알수 없게 된 것이다.
민주생활의 한 중요한 표현으로서 「자율」「자율화」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지난40년 동안 몇번 분노와 희망, 좌절과 실망과 자기연민이 숨가쁘게 교차하는 순간들을 경험했고, 지금 다시 그와 같은 시기를 살고있다. 이번만은 「민주주의」「민주화」하는 일련의 명사의 함축을 짚어 보고, 그 함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룩해야 할 것 같다.
개헌과정에서 그와 같은 합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를 모르거나 알고도 호도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고래의 전통에 민주주의가 없었고, 지난40년 동안 우리는 한번도 민주주의와 민주생활의 실제를 체험해 보지 못했다.
앞으로 개헌작업을 맡아서 벌일 협상 당사자들에게 이제는 어쩌면 한낱 수사가 되어 버린 「민주」「민주화」「자율화」라는 낱말들이 지닌 함축을 차분히 짚고 넘어갈 이해와 마음의 여유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다. 권력구조가 급하고 선거법이 절실하고 국회의원의 자리수와 벼슬자리의 배분, 급기야는 누가 대통령선거에 나선다, 안나선다 하는 것으로 술렁이다 보면 개헌의 본말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민주나 자율이란 말로 뜻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빼앗길 수 없는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가,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 집권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국가나 권력이 누구를 위해서 유지되고 행사되는 것인가에 대한 알기 쉽고, 국민들의 가슴과 피부에 와 닿는 말로 표현되는 합의가 헌법조문의 기술적 조절이나 편집에 앞서야 하는 것이다.
왕이 없어지고 대통령이 나왔다고 민주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국왕을 제자리에 앉혀놓고도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들이 수두룩이 있다. 국회와 법원이 따로 있다고 민의가 맥을 추고 사회정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있고, 국회가 있고, 사법부가 있어서, 이 나라 온 백성이 민주주의를 즐기고 구가해 왔다고 우겨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4·19와 80년의 소용돌이와 바로 엊그제인 6·10, 7·9등, 이 나라 역사에 길이 전해질 사건들의 연유를 호도하고 외면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역시 적어도 공적으로는 - 민주주의자로 자처한다는데 있다. 민주주의와 국가안보를 도모하기 위해서, 나라 헌법이 번번이 대서특필해 온 국민의 기본권이 유보되거나 제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과,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반공도 되고 나라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측이 모두 민주주의자요, 민주화와 자율화의 신봉자로 자처하고 나선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 양자가 국민생활에 끼치는 영향에는 끔찍한 차이가 있어서, 강조의 차이이상의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민주주의」「민주화」「자율화」등 낱말은, 모두가 별 생각없이 남용하는 상투어로, 공허한 수사로 전락한 듯한 인상이 짙다. 수사는 문학이나 웅변술을 위한 것이지, 국리민복을 좌우하는 정치의 어휘로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든지, 누구도 흠잡을 수 없는 수사에 「주권재민」「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이 있다. 한편, 민주주의는 물론, 인간본성과 상치하는 「일사불란」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무소불능」「무불간섭」등 민주를 근본부터 흔들어 대는 악과 부도덕이 나온다. 다양한 개인들이 다양하게 말하고 생각하면서, 존엄과 위신을 지키며함께 어울려 만들어 나가는 민주사회가 연병장일 수는 없지 않은가. 다양속에 일치가 민주의 요결이고 힘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