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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서 갑상선 환자 → 위장 절제, 위암 환자 → 갑상선 제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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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갑상선이 아픈 환자는 위를 잘라내고, 위암환자는 갑상선을 제거하고…'.

지난해 12월 29일 대전시 건양대병원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갑상선 질환자 전모(61.충남 연기군)씨와 위암 초기환자 박모(63.충남 논산시)씨는 지난달 26일 이 병원에 나란히 입원했다. 이들은 사흘 뒤 같은 시간에 각각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을 마친 뒤 의료진은 박씨의 위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갑상선의 절반을 제거한 사실을 알았다. 반면 전씨의 멀쩡한 위장은 이미 3분의 1 정도가 절제된 상태였다. 병원 측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는 도중 의료진이 환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차트(진료기록)를 바꾸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 같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에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위장 대신 갑상선이 잘려나간 박씨는 이렇다할 후유증이 없어 1월 9일 퇴원했다. 그러나 전씨는 수술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 병원의 이영혁 원장은 "담당 의료진을 대상으로 과실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환자 가족과도 보상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 '황당한' 의료사고=건양대병원의 경우처럼 수술하는 환자가 바뀌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동일한 환자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수술 부위의 좌우(左右)가 바뀌거나 멀쩡한 장기를 떼어내는 일은 간혹 발생한다.

2004년 7월 치과에서 사랑니를 빼기로 했던 김모(여.당시 23세)씨는 치료 뒤 사랑니 대신 오른쪽 아래 어금니가 사라진 사실을 발견했다.

2003년 황모(여.당시 38세)씨는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의료진이 실수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 결국 두 다리를 모두 잃게 됐다. 같은 해 오른쪽 배에 탈장 증세를 보인 네 살 난 아이의 왼쪽 배를 수술한 병원도 있다. 유방도 좌우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부위다. 엎드린 채 수술하는 척추수술은 멀쩡한 곳에 칼을 대 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주모(여.당시 30대)씨는 1999년 난소의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로 하고 입원했다. 그런데 정작 수술을 한 의료진은 아예 난소를 떼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 어떻게 이런 일이=환자가 제대로 된 수술을 받기 위해선 여러 단계의 심사 과정을 거친다. 1단계는 병실에서 이뤄진다. 수술실에 가기 전에 차트와 환자 이름을 대조하고 무슨 수술을 받을 것인지도 확인한다. 또 환자 이름이 새겨진 팔찌도 부착한다.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김병식 교수는 "수술 부위 표시는 병원 표준화 심사 항목으로 의무화된 사항"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수술실에 도착하면 입구에서 간호사가 이름, 수술 명, 수술 부위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이번 건양대병원 사고의 경우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수술실에는 수술을 집도한 교수와 전공의.간호사 등 7~8명이 있었으나 환자가 팔목에 차고 있는 인식표(성명.나이 등이 적힌 종이 팔찌)를 확인한 의료진이 아무도 없었다.

병원 측은 "체구나 연령이 비슷하고 수술 준비를 위해 마스크까지 착용한 환자를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지만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 의료사고 예방하려면=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김정훈 교수는 "이전에는 드물지만 혈액형이 뒤바뀌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피검사를 하면 그 즉시 바코드가 발행되고 환자 확인 후 검체에 붙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거의 일어나기 힘들다"고 말한다. 만일의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간호사, 담당의사, 마취과 의사 등에 의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위암 수술을 할 경우 위장을 열어 암 병소를 눈으로 확인한 후 절제 수술을 한다"고 말했다.

환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묻는 사항에 성실히 답하는 게 필요하다. 또 미심쩍을 때는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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