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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정원의 국정 농단 개입, 끝은 어디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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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정보원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또 등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더니 이번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도 개입한 단서가 박영수 특검팀에 포착됐다고 한다. 국정원이 주요 기관들에 정보관(IO)을 파견해 해당 기관의 각종 정보를 수집한다는 건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넓게 이해하면 정보기관의 고유한 활동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단순한 동향보고라도 불순한 정치적 목적과 의도가 내포됐다면 탈법적 사찰이나 공작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정원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안이다. 국정원은 합병 찬성 직전인 2015년 6~7월 국민연금 내부의 찬반 분위기와 관련 위원들의 성향, 비공개 회의 결과 등을 수집해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왜 민간 기업의 합병 문제와 공기업의 경영적 판단에 관심을 가졌는지, 보고라인이 아닌 정책조정수석에게 어떤 목적으로 전달됐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국정원은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동향 보고뿐만 아니라 1만여 명의 명단으로 구성된 블랙리스트의 작성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국정원장을 지낸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자택에 대한 2일의 압수수색도 이와 맞물린 조치로 풀이된다. 국정원의 탈법적 행태는 지난달 15일의 국회 청문회에서는 양 대법원장 등 사법부에 대해 불법사찰 의혹이 폭로되면서 논란이 됐다.

국정 농단 사태 곳곳에서 드러난 이런 일탈행위들은 국정원이 동향 수집의 차원을 넘어 청와대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상납하는 정권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2013년 ‘댓글조작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조금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허망할 뿐이다. 주동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국정원을 그대로 둘지까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