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 시위엔 아무 말 없고 공권력 매도 분위기에 허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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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과격 시위대에 대해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다 불상사가 일어났는데도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경찰 지휘부는 일선 직원들의 잇따른 돌출 행동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 모자.책 보내기로 불만 표출=현직 경감이 농민 사망사고의 책임을 경찰이 지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경찰 정모(正帽)를 우송한 데 이어 서울의 한 경찰관은 "일선 경찰관의 애환을 아느냐"며 자신의 저서를 청와대에 보냈다.

서울 중랑경찰서 김모(40) 경사는 11일 "민생치안의 현장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시길…"이라는 메모와 함께 '경찰 현장 이야기-야누스의 일기'라는 책을 등기우편으로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송부했다.

12일에는 경찰 지휘부가 하위직 경찰관들의 집단행동을 우려, 복무 기강을 강조하며 공문을 내려보내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무궁화클럽 탈퇴를 권유했다. 이에 무궁화클럽 회장이 국가인권위 위원에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진정서를 냈다.

최근에는 경찰관들 사이에 검찰의 피의자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가 기소된 한 경찰관의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검찰에 항의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 실망이 돌출행동으로=일선 경찰관들은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 농민 사망사고 책임 논란, 하위직 경찰관의 근속 승진 확대 문제 등에서 크게 실망하고 있다.

지난해 수사 주체성 인정과 검찰과의 협력관계를 내건 수사권 조정은 경찰을 뭉치게 했지만 법 개정까지 이루지는 못했다. 경위까지 자동승진토록 한 경찰공무원법이 개정됐지만 여당의 반대로 보완입법을 거쳐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면서 하위직 경찰관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농민 사망사고로 허 전 경찰청장이 낙마한 것은 촉매제로 작용했다. 수사권 조정은 표류하고, 잘못된 시위 문화 대신 공권력이 공격당하는 상황을 수긍하기 힘들다는 게 일선 경찰의 분위기다.

이택순 경찰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등의 절차와 총경 이상 경찰 간부 인사가 지연되면서 구심점이 없는 것도 경찰관들이 동요하는 한 요인이다.

경찰 지휘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근무기강 확립'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재확인했다. 더 이상의 돌출행동은 경찰에 득이 되지 않는다며 일선 경찰을 설득하겠다는 정도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15만 명이나 되다 보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영(令)이 안 서는 모습은 조직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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