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中東, 정말 선순환으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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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칼럼에서 중동이 마침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십년 동안 실기(失機)와 절망을 경험한 후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전진 방어'라는 악순환이 멈추고 선순환으로 바뀌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한달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 지적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샤울 모파즈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한달 전 "이번에 기회를 주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가봐야 안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최근 이스라엘 라디오에선 "지난 한 달간의 상황을 꼼꼼히 살펴보니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주 초(7월 27일) 절대 하지 않겠다던 일을 했다. 과거 '평범한' 팔레스타인 죄수들만 석방했던 이스라엘이 테러 공격을 주도했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의 조직원 1백명을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번 결정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물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샤론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또 하나의 선물을 들고 갔다.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을 제한하던 검문소 10곳을 철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부시 대통령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의 전임자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주도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상은 실패한 반면, 부시 대통령 임기 중에는 긍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대통령의 차이는 이라크전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매일 공격당하긴 하지만, 이라크전의 승리는 미국을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당사자로 만들었다. 이란까지 놀란 모양이다. 이란은 갑자기 자국의 핵 문제와 관련해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테헤란은 핵 시설을 공개하는 대가로 대미 관계를 개선하는 협상에 나설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압력을 받고 있다. 미 의회가 작성한 9백쪽짜리 보고서는 사우디 정부와 국제 테러조직 간의 연계 의혹을 잔뜩 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 정부는 우방인 사우디가 너무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우디 경찰과 보안당국은 갑자기 테러 조직 소탕과 추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럽의 학생들은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말했다는 '미워하지만 두려워한다'는 라틴어 격언에 익숙하다. 이슬람권은 분명히 부시 대통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부시 대통령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부시와 엇나가는 아랍 지도자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미국 옆에 서는 게 낫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승리한 후 미국의 최대 우방인 이스라엘도 워싱턴에 '노(No)'라고 말하기가 부담스러워졌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 이후 이스라엘이 공격받을 가능성은 더욱 작아졌다. 이스라엘은 또 지난 수개월간 팔레스타인의 테러 조직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와 테러를 번갈아 구사했던 아라파트의 힘을 빼는 데 성공했다. 샤론 총리는 아라파트의 경쟁자인 압바스 총리의 역할을 강화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각종 통제조치를 완화하면 할수록 압바스의 내부 장악력은 커진다.

중동 전문가들은 오늘 중동에서 평화가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가 다음날 완전히 상황이 잘못될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한달 이상이나 좋은 소식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정말 바뀔 것인가. 분명히 외부 요인들은 지난 한세기의 어느 때보다 좋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라크나 부시와는 관계가 없다.

지난 3년간 계속된 유혈 사태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지쳤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실익을 따지고 계산하는 논리적 이성으로는 분쟁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녹초가 돼버린 양측의 상태가 평화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채병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