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설가 복거일씨 평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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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 식민 통치가 확고하게 자리잡자, 조선 사람들은 연명하기 위해서도 자발적으로 친일 행위들을 해야만 됐다. …절필할 수 있었던 몇몇 사람들을 빼놓으면 당시엔 모든 문인들이 '잠재적 친일 문인'이었다."

지난해 6월 계간지 '철학과 현실' 기고문에서 "친일의 개념은 정치가 아닌 역사의 영역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던 소설가 복거일(57.사진)씨가 신간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들린아침)를 출간했다.

책은 1년 전 기고문과 주장하는 바는 같지만, 실증적인 자료를 보강해 자신의 주장을 면밀히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친일의 불가피성을 너무 인정해 주는 것 아니냐는 이견들을 낳기도 했다.

"친일 행위와 친일파 처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그런 주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런 주장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가?'하는 물음조차 제기되지 않는다"고 밝히는 복씨는 "모두 용감한 달걀이 되어 바위처럼 버티고 선 조선 총독부의 권력에 부딪혀야 했느냐"고 되묻는다.

기존의 통념처럼 친일파를 명확히 정의할 수도, 단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한 조선인에 대한 고문과 여자들을 속이거나 납치해 '종군 위안부'로 만드는 행위처럼 별다른 이견없이 친일 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사례는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고 밝힌다.

신간에서는 조선조 말기의 사회 상황, 국제 정세 등을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되기 전인 1908년에도 일본이 조선인 헌병 보조원을 성공적으로 모집했다는 사실에 미뤄볼 때, 조선총독부는 조선 지식인을 징집해 연사로 만들고, 조선인 순사들이나 헌병들을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한두 사람 정도는 큰 값을 치르고 그런 강요를 거부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복씨는 "일본의 식민 통치 아래서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는 가정은 일본의 식민 통치가 가혹한 것이 아니었다는 판단을 전제로 삼는다"며 "친일문제가 이제는 일상의 영역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옮겨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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