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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00곳 1만번 상영 다른 영화는 어디서 보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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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9면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연일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개봉 첫날 영화를 관람한 사람은 72만 8050명. ‘명량’이 보유한 기록 68만 2701명을 가뿐히 넘어서면서 역대 오프닝 스코어 1위 기록을 경신했다. 어디 그뿐인가. 올 봄 개봉한 한국 영화들이 100만명의 문턱을 힘겹게 넘어선 것과 달리 개봉 6일 만에 4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해 개봉한 ‘어벤져스2:에이지 오브 울트론’보다 빠른 기록이다.


더구나 이번 주말은 어린이날을 낀 황금 연휴 기간이니 극장으로서도 호재다. 해당 날짜에 임박해 임시공휴일이 지정된 탓에 멀리 떠나지 못하는 시민들이 극장을 찾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6일 개봉하는 영화를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의 전략도 주효했다. 그러니 역대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동원도 결코 꿈의 스코어는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기록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매율이 95%에 육박한 가운데 지난 1일에는 1969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스크린 점유율 42.9%. 하루 최다 상영 횟수도 1만 336회로 지난 2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었던 ‘검사외전’의 9451회를 훨씬 웃돈다. 이는 교차 상영이 포함된 수치니 체감 점유율은 훨씬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주 매출액 점유율도 90%를 넘고 ‘시간이탈자’(2.7%)나 ‘주토피아’(2.3%)를 제외하면 모두 0%대다.


상황이 이쯤 되니 다른 영화들이 경쟁을 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같은 날 개봉을 택한 ‘태양 아래’나 ‘탐욕의 별’ 등은 상업 영화와는 거리가 멀고, 5일에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제외하곤 모두 애니메이션이다. 차태현ㆍ빅토리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2’는 당초 5일로 예정된 개봉을 갑자기 연기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도 12일을 택했으니 당분간 ‘캡틴 아메리카’의 독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주 만난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의 민병훈 감독은 “가장 자본주의적 국가인 미국에서도 영화 산업을 규제한다”고 토로했다. 관객의 볼 권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영화관을 찾는 관객 수가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파리처럼 16개 관에 16편의 영화가 걸려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어도 한 극장에서 3편 이상의 영화를 만나기 힘든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운 게 어디 그 한 사람뿐일까. 스크린 수가 30여 개에 불과해도 굳이 ‘브루클린’을 상영하는 곳을 찾아 가는 이도, 수영대회만 나가면 매번 4등을 하더라도 즐길 줄 아는 ‘4등’의 준호를 지지하는 이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속 히어로들도 정부의 규제를 둘러싸고 언성을 높인다. 수퍼 히어로들의 무분별한 활동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자 정부가 이를 관리 감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자본의 수혜를 입은 아이언맨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정부의 편을 들고, 군인 출신에 이름마저 캡틴 아메리카인 리더는 의외로 규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그 반대편에 선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 더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스크린 독과점이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지만 그 기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선량한 영화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니 말이다. 최소한 다른 것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 이들의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 나는 캡틴 아메리카를 계속 보고 싶다. 허나 현실 속 작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들도 계속해서 볼 수 있길 희망한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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