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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빠른 AI 냉장고, 주인 외출 땐 알아서 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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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로봇 청소기가 바닥을 기어다니다 누군가의 발과 맞닥뜨렸다고 치자. 지금까지 나온 로봇 청소기들은 이 발을 넘으려 안간힘을 썼다. 발등 높이를 바탕으로 ‘문턱에 부딪혔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딥 러닝(Deep Learning·분류를 통한 기계 학습)’을 하는 로봇 청소기라면 다르다. 축적한 정보를 바탕으로 발등과 문턱의 차이를 구분해낸다. 문턱이라면 넘어가고, 발이라면 잠시 기다렸다가 돌아간다.

내년 CES는 ‘스마트홈’ 경연장
인공지능 기술과 사물인터넷 접목
셀프학습 가전 대거 등장할 전망
구글·아마존도 앞다퉈 서비스나서
삼성·LG 등과 가전시장 한판 승부

LG전자가 다음달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전시회(CES, 1월 5~8일)에서 공개할 딥러닝 기반의 스마트홈 서비스 ‘스마트씽큐’의 대표 사례다.

가전제품 및 냉난방 시스템 등 집안 모든 장치를 연결해 한번에 관리한다는 개념의 ‘스마트홈’은 CES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다. 삼성전자·LG전자 같은 가전 업체는 물론 구글·아마존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스마트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관련 기술은 수년 째 CES의 핵심 주제였다. 이번 전시회에선 많은 전자 업체들이 인공지능(AI)과 IoT가 결합한 서비스를 선보일 전망이다. LG전자 스마트씽큐의 경우, 이 회사 가전 제품을 쓰는 소비자의 생활 패턴 자체가 스마트씽큐가 공부할 빅데이터가 된다. 장혜원 LG전자 차장은 “특정 시간에 늘 집을 비우는 소비자가 있다면 냉장고는 이를 학습해 해당 시간엔 알아서 절전 모드로 작동하는 식”이라며 “소비자가 시간대 별로 주로 머무는 공간을 분석해 냉난방을 조절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IoT 냉장고 ‘패밀리허브’를 내놓으며 주목받은 삼성전자도 AI 기술을 한층 강화한 IoT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스마트폰으로 가전을 연결, 작동시키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된 지 오래”라며 “앞으론 얼마나 ‘스스로 알아서’ 가전이 작동할 수 있는지, 즉 AI 기술의 수준이 스마트홈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가전 업체들이 가전 제품을 기반으로 스마트홈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과 달리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스피커 기반의 스마트홈 서비스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2014년 출시된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와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출시된 구글의 ‘구글홈’이 대표적이다. ‘가상 집사’라는 뜻에서 버추얼 홈어시스턴트(Virtual Home-assistant)라고도 불리는 이들 스피커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컨슈머테크놀로지어소시에이션(CTA)은 11월 블랙프라이데이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대목 기간에 아마존 에코와 구글홈이 1000만~1200만대 가량 팔릴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기간 웨어러블 기기가 1260만대 팔릴 걸로 추정된 걸 감안하면 무서운 속도로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스마트홈 시장의 관건은 누가 더 많은 빅데이터를 확보하느냐”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홈 시장에서만큼은 삼성·LG 같은 국내 가전업체들이 구글·아마존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신진우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구글이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엄청난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냉장고를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더 잘 아는 것은 삼성전자”라며 “세계 가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이 빅데이터를 내세워 스마트홈 시장에 좀더 공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홈 시장이 본격 궤도에 접어들기 전에 소비자 친화적인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숙제다. 최승진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음성 인식이나 빅데이터 분석 같은 스마트홈 관련 기술은 이제 연구실에선 더이상 발전시킬 게 없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했다”며 “어느 업체가 실제 시장에서 더 정교하게 기술을 다듬을지, 소비자들이 어떤 형태의 플랫폼에 익숙함을 느낄지가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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